[김성윤의 맛 세상] 폴크스바겐은 소시지 그만 만들고, 포르셰가 꿀벌 치는 까닭은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1. 9. 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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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기업 폴크스바겐이 소시지 생산을 중단하려다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본지 9월 2일 자 B3면 보도> 폴크스바겐이 소시지를 만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는데, 알고 보니 역사도 길고 생산량도 엄청나다.

공장 직원 급식용으로 1973년부터 50년 가까이 본사 공장 내 제조시설에서 하루 2만개, 연간 700만개가량 생산해왔다. 포장지에는 ‘폴크스바겐 오리지널 부품(Volkswagen Originalteil)’이라고 적혀 있고, ‘199 398 500 A’라는 정식 부품 번호도 받았다.

/일러스트

하긴 ‘국민차(폴크스바겐)’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이니 독일 국민 음식 부어스트(wurst·소시지)를 만든다는 게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독일은 소시지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려 1500여 종의 소시지가 있다고 한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이 “246가지 치즈를 가진 나라를 통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 적 있는데, 독일 사람들이라면 “고작 246종류로 우는 소리라니, 프랑스인답다”며 코웃음 쳤을지 모를 일이다.

매사에 철저한 독일답게 소시지마다 먹는 시간과 방식까지 정해져 있다. 구워 먹는 소시지와 데쳐 먹는 소시지가 따로 있다. 맥주와 어울리는 소시지는 당연하고, 차(茶) 마실 때 먹는 소시지도 있다. 뮌헨 사람들은 자신들의 명물 바이스부어스트는 반드시 교회 종소리가 정오를 알리기 전, 굽지 않고 데쳐서, 껍질을 벗겨내고 먹어야 한다고 믿는다.

폴크스바겐이 비난 여론을 예상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시지 생산 중단 결정을 내린 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폴크스바겐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애는 ‘탄소중립(carbon-neutral)’을 천명했다. 탄소발자국을 오는 2025년까지 2010년 대비 약 45% 줄이고, 2050년에는 완전한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탄소중립은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에도 어려운 과제인 모양이다. 지난 1월 폴크스바겐은 유럽연합(EU)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치를 초과해 1억 유로(약 1382억원)가 넘는 벌금을 물게 됐다. 이 일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조금이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8개월 뒤인 9월 1일 소시지 생산을 중단했다. 육류·유제품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세계 탄소 배출량의 14% 정도로, 자동차 생산·사용보다 환경에 더 해롭다는 분석도 있다.

환경보호를 위해 폴크스바겐이 소시지 생산 중단을 결정하는 동안, 포르셰는 양봉(養蜂)에 나섰다. 2017년부터 본사가 있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꿀벌 약 150만 마리를 기르며 한 해 400kg가량의 꿀을 생산한다. 라이프치히 고객 서비스센터에서 병당 8유로(약 1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양봉에 뛰어든 회사는 포르셰 말고도 2곳 더 있다. 럭셔리 자동차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다. 롤스로이스는 영국 굿우드 공장에 벌통 6개를 설치했다. 약 25만 마리의 꿀벌이 일 년에 약 96kg의 꿀을 생산한다. 이 꿀은 팔지 않고 고객에게 선물로 제공한다. 벤틀리는 2019년 첫 꿀을 수확했다. 공장 부지에 벌통 2개를 설치하고 벌 12만여 마리를 길러 매년 15kg가량의 꿀을 생산한다.

포르셰와 롤스로이스, 벤틀리가 양봉에 나선 건 폴크스바겐이 소시지 생산을 중단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바로 환경보호다. “지구에서 꿀벌이 없어지면 인류도 4년 안에 멸종할 것이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꿀벌은 생태계 유지에 결정적이다. 꽃가루를 매개해주는 꿀벌이 사라지면 생태계가 붕괴되고 인류의 식량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유엔 세계식량기구(FAO)는 경고한다.

전 세계 꿀벌 개체수는 감소하고 있다. 해마다 꿀벌 30~40%가 사라진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야생벌 2만종 중 약 40%가 멸종 위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고급 자동차 기업들이 사회 공헌 차원에서 양봉에 뛰어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이랄까. 더 이상 김장을 담그지 않는 가정이 늘었는데, 현대자동차는 포기김치라도 생산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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