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인가, 족쇄인가
정상혁 기자 2021. 9. 9. 03:04
[이 한장의 사진]
군대에서는 사람도 군용(軍用)이다.
최전방 15사단 승리부대, 당시 스물한 살이던 사진가 이한구(53)씨는 상병 무렵 사진병으로 뽑혀 사진거리를 찾으러 내무반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제조일자 1986년 7월이 적힌 군용 모포 위에서, 주말 야간 근무를 서고 오침(午寢) 중이던 병사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반바지 아래 드러난 발목에 고무링이 감겨 있었다. 이씨는 “고무링이 없으면 군복 바지 밑단이 흘러내려 복장 불량이 되니 잃어버리지 않게 늘 발목에 차고 있는 게 상책”이라며 “그 장면이 묘한 족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씨의 대표작 ‘군용’ 연작을 소개하는 사진전이 서울 청운동 류가헌에서 10월 3일까지 열린다. 보안 문제로 반출이 안될까 촬영한 필름을 비닐로 감싸 땅에 파묻어 뒀다가, 휴가 때마다 몰래 집으로 옮겨 살려낸 당대의 증거물이다. 보관상의 어려움 탓에 컬러 인화 대신 흑백을 택했지만, 그 단순한 음영(陰影)이 군대라는 특수 공간을 더욱 강렬하게 부각한다. 2012년 서울 개인전, 2015년 미국 휴스턴 포토페스트에서 선보였고, 올해 사진집 발간을 맞아 다시 관람객을 찾는다. 청춘과 절망이 교차하는 이 날것의 사진에 대해 이원 시인이 명료한 평가를 남겼다.
“폭로도 없다. 고발도 없다. 다만 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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