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힘의 역설
[경향신문]
“맥베스를 환영하라! 글래미스 영주시다!” “맥베스를 환영하라! 코도의 영주시다!” “맥베스를 환영하라! 왕이 되실 분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장군인 주인공이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오던 길에 세 명의 마녀와 마주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녀들은 그가 코도의 영주가 될 것이며 장차 왕도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놀랍게도 바로 그 자리에서 전령으로부터 이제 코도의 영주가 되었음을 통보받는다. 다음 수순은 왕이 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맥베스는 과대망상과 야욕에 사로잡혀 악행을 거듭하면서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파멸로 치닫는다.
대권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요즘, 이 작품이 자꾸 떠오른다. 자질도 역량도 없는 인물들로 하여금 아무 준비도 없이 무모하게 출사표를 던지게 만든 여론조사, 지지율이라는 허깨비가 마녀의 속삭임을 닮은 듯 느껴져서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승승장구하던 밀실에서 그들의 에고는 한없이 비대해졌다. 신기루 같은 갈채와 환호에 현혹되어 멋모르고 광장으로 뛰쳐나와 위용을 뽐내려다가 헛발질만 하며 천박하고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기고만장해지는 모습은 블랙코미디와 다름없다.
자기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는 데서 수많은 비극이 생겨난다. 정치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근원적인 인정 결핍을 지배 욕구로 치환하는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해 타인을 수단화하는 자기애적 인격 장애는 도처에 있다. 타고난 성격 탓이거나 성장 과정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성인기의 사회적 경험에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인 경우도 적지 않다. 권위주의적인 조직에서 지위를 누리다가 은퇴 후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전형이다. 아랫사람들이 떠받들어주는 환경에서 익숙해진 페르소나가 자아로 고착된 것이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성숙해지기가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구태의연한 세계에 갇힌 채로 나이만 들기 때문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데미안>의 이 명구는 사춘기만이 아니라 평생 간직해야 할 잠언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열린 존재다. 끊임없이 다시 태어남으로써 인격을 완성해가야 한다. 아집과 몽매의 껍데기를 하나씩 돌파하면서 우리는 어른이 된다. 그러려면 알을 깨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분리가 아닌 연결, 통제가 아닌 돌봄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다. 그 역동적인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면서 비좁은 ‘나’는 원대한 ‘우리’로 나아간다. 운동경기에서 힘을 빼면 오히려 더 큰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역설은 여기에서도 진리다. 소아병적인 집착과 강박에서 풀려나면서 삶은 한 단계씩 고양되는 것이다. 높은 경지에 자기의 중심을 세운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당연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힘을 겨루고 남을 지배하는 파워게임 대신 더불어 보살피며 생명의 기운을 북돋는 일에 힘을 쓸 줄 안다. 서로의 취약함을 보듬으면서 마음의 중심을 잇는 연민과 지혜로 우리는 조금씩 철들어 간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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