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돈이 사람을 돌볼 수 없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2021. 9. 9.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아이, 하면 바로 돈 타령을 하는 것은 새롭지도 않다. 통계청과 보건사회연구소 등의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동아일보 2019 대한민국 양육비 계산기를 돌려 보면 이제 평균 양육 비용은 약 3억8000만원으로 나온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임신, 출산, 육아 문제를 돈으로 환산해 해결할 수 있을까? 일부 정책 입안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경남 창원시는 ‘결혼드림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하면 1억원을 대출해 주고 10년 안에 세 명의 아이를 낳으면 탕감해 준다는 계획이다. 충청남도에는 ‘충남형 더 행복한 주택’이 있다. 이쪽은 아이 둘을 낳으면 임대료가 공짜라는 것이다.

이것은 ‘가성비’를 따지는 정책이다. 1억원을 받는 게 아니라 1억원을 더 들이더라도 나가서 커리어를 유지하는 쪽이 더 유리한 계층은 이런 정책에 흔들리지 않는다. 계산기를 제대로 두드리면 그 정도 돈이 전체 양육 비용을 크게 상쇄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안다. 결국 타깃이 되는 것은 1억원, 하다 못해 임대주택의 임대료가 당장 아쉬운 경제적 계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직접 압력을 받는 것은 그 안의 기혼 여성이다. 대한민국 출산지도, 신혼부부 특별공급 제도의 임신증명 및 출산이행 확인각서, ‘고스펙’ 여성의 ‘하향혼’ 권장, ‘여성 탓’을 하던 ‘저출산’ 대책은 이미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문제를 ‘가성비’로 해결하려 할수록 여성 인권을 주저앉히려는 시도가 될 뿐이다.

돌봄에 대해 깊이 고민한 사람들의 결론은 ‘돈이 사람을 돌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복지정책에서 현금을 준다고 하면 대번 ‘포퓰리즘’이라며 비판받는다. 정책 대상자의 상태와 필요를 파악하고,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복지정책의 기본이다. 이런 미봉책들에서는 그런 고민을 읽을 수 없다. 왜 이런 사회에서는 이미 태어난 사람들도 불행하게 살아가는지, 근본적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최근 ‘초등교사가 본 워킹맘의 현실’이라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 큰 관심을 받았다. ‘워킹맘’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더욱 일과 돌봄을 병행하기 어렵고, 코로나 정국인 지금 커리어 중단의 압력은 더 커지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다.

이번 대선에서 김재연, 심상정 후보가 주 4일제 공약을 걸었다. 두 후보는 공통적으로 초장시간 노동을 해결이 시급한 문제로 파악했다. 장시간 노동이 기본인 회사에서 혼자 정시 퇴근할 수 있는가? 어쩌다 하루는 그럴 수 있다. 그걸 매일 할 수 있는가? 그러고도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돌보는 사람은 그렇게 ‘사회생활’에서 배제된다.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기본으로 노동의 틀 자체를 바꾸는 일은 가장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이 된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삶부터 살 만해야 한다. 절대다수가 지옥에 사는 현실 속에 몇몇에게만 가느다란 동아줄을 내려 주겠다는 시도는 적절치도 않고, 모두의 반감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제는 아이가 어떤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인지를 묻고, 토론하자.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