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엄마와 치즈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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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고향인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이후 내 소원 중 하나는 엄마와 함께 시장에서 장보기였다. 혼자 대형마트를 가거나 백화점에 가면 또래 대학생들이 엄마와 함께 장을 보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보다 먼저 서울살이를 시작한 언니와 단둘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부산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다.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며 서울 생활에 적응될 무렵 엄마는 종종 서울에 올라오셨다. 그때마다 큰 보따리에 반찬과 생필품을 잔뜩 담아왔다. “서울은 야채도 어찌나 비싼지...”라며 풀어놓는 보자기에 파와 호박까지 들어 있을 정도였다. 나는 엄마에게 반찬을 많이 싸오지 말라고 매번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서울역에서 만난 엄마 손에는 늘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무거운 짐이 들려 있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엄마와 함께 갈 예쁜 장소들을 자주 메모했다. 대부분 친구나 연인들이 많이 모이는 카페나 맛집이었다. 복잡한 시내 곳곳을 하루 종일 걸어 다녔는데도, 엄마는 다리 아프다는 말 한번 안 하셨다. 딸이 찾아 놓은 장소가 변변치 않을 때도 엄마는 항상 행복해하셨다. 아마도 나는 학창 시절 부재한 ‘추억’을 그렇게라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추석이 지나면 고희(古稀)를 맞는다. 아직도 결혼한 딸이 늦게 퇴근을 하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걱정하시는 엄마. 소소한 나의 고민에 여전히 밤잠을 설치시는 엄마에게 마흔이 넘은 딸은 몇 살에 멈춰 있는 것일까?
타지 생활 20년, 이제 고향에서의 기억보다 이곳에서의 시간들이 더 짙다. 엄마와 나는 20년이 넘게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셈이다. 추석이 지나면 엄마를 위한 서울행 기차표를 예매할 것이다. 여전히 소녀처럼 예쁜 카페를 좋아하는 엄마를 모시고 갈 장소도 찾아 놓았다.
아마도 이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에 ‘그 소녀’가 살고 있을 것 같다. 이제 청명한 가을이다. 일흔이 되신 엄마의 마음에 이 계절이 살포시 내려앉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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