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詩편지](49) 사랑의 의무
[경향신문]
내가 가장 많이
사랑하는 당신이
가장 많이
나를 아프게 하네요
보이지 않게
서로 어긋나 고통스런
몸 안의 뼈들처럼
우린 왜 이리
다르게 어긋나는지
그래도 맞추도록
애를 써야죠
당신을 사랑해야죠
나의 그리움은
깨어진 항아리
물을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엎디어 웁니다
너무 오래되니
편안해서 어긋나는 사랑
다시 맞추려는 노력은
언제나
아름다운 의무입니다
내 속마음 몰라주는
당신을 원망하며
미워하다가도
문득 당신이 보고 싶네요
- 시집 <작은 기쁨> 중에서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로마서 13:8). 우리가 외우는 기도서에도 자주 나오는 이 말의 뜻을 수도연륜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서로 사랑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선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좌절합니다. 수녀원에서도 인사 이동철이 되면 특히 소공동체의 팀원이 바뀔 적마다 새로운 인연을 고마워하면서도 다시 맺어야 할 관계 때문에 긴장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론상으로는 쉬울 것 같은데 실제로 함께 사는 일은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요?” “멀리 있는 이들 챙겨주고 사랑하는 일은 잘되는데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에는 끝없는 인내와 용기가 요구된다니까요.” “가까운 이들에게 쉽게 상처 받고 온전히 용서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적마다 얼마나 실망스러운지요.” “가까운 이들에게 느낀 서운함은 그 뒤끝이 오래가서 괴롭다니까요.”
어느날 함께 사는 수녀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저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노년의 여정에 있다 보니 쉽게 외로움을 타서인가 수십년간 공들여온 우정의 관계에서도 아주 사소한 일로 서운해하는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체면 때문에 겉으론 내색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을 적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인간적으로 부담없이 즐거운 이야길 나누고 싶은데 듣는 이가 계속 거룩하고 종교적인 말만 하는 일, 친구니까 슬쩍 내 자랑 좀 해도 되겠지 싶어 어떤 경험담을 말할 때 정색을 하고 ‘겸손’에 대한 훈계조의 레슨을 시작하면 ‘좀 그냥 지나치면 안 되나?’ 생각하면서 벗으로서의 따뜻한 말 한마디, 응원의 눈길이 더없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실수를 많이 했기에 드러내놓고 표현은 못하지만 때로는 서운한 뒤끝이 생각보다 오래가서 스스로 반성하곤 합니다. 서로 맞지 않아 어긋나는 뼈에 빗대어 관계의 어려움을 표현해 본 이 시를 좋아해준 독자들에게도 고마워하며 저는 ‘너무 오래되니 편안해서 어긋나는 사랑’을 ‘다시 맞추려는’ 힘들지만 꼭 필요한 노력을 더욱 열심히 기쁘게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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