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다시, 촛불의 연합정치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2021. 9. 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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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선 경쟁이 본격화되는 중에 ‘촛불 5년’을 맞는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임을 자임하면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공정과 정의가 정부와 진보세력을 비판하는 담론이 되었다. 열광이 환멸로 전환하고, ‘촛불혁명’이라는 말도 꺼리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면 촛불의 힘은 완전히 사그라졌는가?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정치권이 촛불의 가치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지만, 촛불은 여전히 여야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야권의 대선 주자들조차 중도층 시민을 의식해서 5·18 묘역과 봉하마을을 찾고 있다. 야권에서 앞세우는 ‘공정과 상식’ 구호도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를 제약하는 담론이다. 촛불의 의지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열광의 계기를 찾으면, 20대 대선의 향방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촛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진욱 교수에 의하면, 촛불은 혁명과 복고의 모순적 공존이다. 인류사에서 대혁명은 대중 참여, 근본 가치의 전환, 정치·경제 시스템 변화가 함께 이루어진 사건이다.

촛불이 제기한 가치는 복합적이다. 촛불이 요구한 정의에는 절차적인 것과 평등적인 것이 혼재해 있다. 2016년 가을 이후 촛불 대중의 열광에는 공존과 공생에 대한 기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집권세력 일부는 ‘87년 체제’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협력했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려면 이들을 포함한 촛불의 연합정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연합정치보다는 정치 투쟁의 길을 택했다. 적폐청산 프레임이 길어지는 가운데, 집권층 내부의 절차적 정의가 흔들렸다. 절차적 정의를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평등적 정의를 추구할 힘은 더욱 약해졌다. 돌이켜 보면 연합정치의 틀이 작동하던 시기에 개혁정책이 진전될 수 있었다. ‘87년 체제’의 출범 자체가 정치적 타협 속에서 이루어진 진전이었다. ‘8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부터 다져야 한다. 연합정치가 아니면 촛불의 개혁 방향을 관철하기 어렵다.

전환기 상황에서 적응과 혁신의 과정을 수행한 사례로 노태우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들 수 있다. 노태우 정부는 당시 사회주의권의 변화와 냉전 완화의 조건을 냉철히 인식하면서 개혁의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적대국이던 소련, 중국, 베트남과 수교했으며, 북한과도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유엔 동시 가입을 이루어냈다.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소득분배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하는 한편, 1기 신도시를 건설했다. 노태우 정부가 거둔 정책성과의 기반에는 협력의 정치자산이 있었다. 비록 군부독재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포용적이고 중도적인 정치노선을 견지했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정치연합을 구축하면서 김대중과의 협치를 꾸준히 추구했다.

김대중 정부의 경우 외환위기라는 절체절명의 환경 속에서 출범했다. 직면한 위기에서 벗어나고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기업·노동·공공 부문 등 4대 개혁을 추진했다. 개발독재와 관치에 맞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틀을 세웠다. 참여와 협력에 바탕을 둔 노사관계, 생산적 사회복지체제, 지역균형개발 등 생명력 있는 정책담론을 제시했다. 유례없는 한·일, 한·중, 한·미 친선의 시대를 열었으며,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이러한 개혁성과를 낸 힘은 연합정치에 있었다.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자민련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김대중·김종필의 정치연합은 개도국에서는 드문 정권교체를 이루어냈고 한국 사회의 발전단계를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은 또 어려운 시기다. 전환기이자 위기의 시대다. 코로나19 충격, 미·중 전략경쟁, 기후위기, 저성장·불평등, 인구위기와 세대갈등은 다시 촛불의 연대적 가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내려면 10년 이상의 꾸준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포용적인 연합정치를 기대해본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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