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민주화 이후의 훈구
[경향신문]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대개는 ‘훈구’라는 말을 기억한다. ‘훈구’와 ‘사림’은 시험에도 자주 나왔다. 대략 사림이 좋은 쪽이라면 훈구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다. 조금 더 들어가면 두 세력 사이에 여러 번의 ‘사화’가 있었다는 것도 연상된다. 훈구가 사림을 박해해 귀양 보내고 죽인 사건들이다.
하지만 훈구(勳舊)라는 말 자체는 본래 좋은 뜻이다. 국어사전에 “대대로 나라나 군주를 위하여 드러나게 세운 공로가 있는 집안이나 신하”라고 나온다. 그럼에도 훈구가 부정적 이미지를 띠게 된 것은 오늘날 훈구를 사림의 시각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보고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두 세력 간 100년 가까운 갈등과 싸움에서 결국은 사림이 승리했다.
그런데 훈구는 시대를 달리하여 두 가지 모습을 가졌다. 그들은 본래 세종이 키운 신하들이었다. 세종이 이룩한 각 방면의 혁혁한 업적을 실무적으로 수행했던 뛰어난 실무관료들이 바로 훈구이다. 이것이 그들의 첫 번째 모습이다. 세조 즉위와 함께 반전이 왔다. 훈구의 중심인물들은 세조의 친구들이다. 신숙주는 세조와 나이가 같다.
흥미롭게도 훈구와 처음으로 대립했던 사육신도 세조의 친구들이었다. 사육신의 대표 격인 성삼문과 훈구의 대표 격인 신숙주는 20대부터 서로에게 최고의 절친이었다. 신숙주가 26세, 성삼문이 25세 되던 1442년(세종 24) 두 사람은 함께 사가독서를 하기도 했다. 사가독서는 조선 정부가 인재 양성을 위해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숙식을 함께하며 공부하게 한 제도였다. 당연히 당대 젊은 엘리트 관료들이 선발되었다. 이때 두 사람과 함께 뽑혔던 인물들이 박팽년, 이개, 하위지, 이석형이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하자, 젊은 엘리트 관료들은 양분되었다. 세조 편에 선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세조 편에 선 신숙주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일도 아니다. 유학에서 정치의 궁극적인 명분은 백성들을 위하는 데 있다. 실제로 세조의 정치적 성과는 적지 않다. 하지만 세조의 즉위 과정이 당대의 정치윤리 명분에서 어긋났던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세조는 자기편에 서준 공신들을 우대했고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를 운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부패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훈구는 세조 생전에는 하나의 독립적 권력 집단은 아니었다. 훈구가 독자적 집단으로 활동한 것은 세조 사망 이후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당시 만들어진 시스템이 상당 수준 한국 사회의 기축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이 관료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하는 체제였다. 그 결과 재벌이 탄생했다. 효율을 위해 민주주의는 배제되었다. 물론 이후 한국은 민주화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 분야의 독재자를 제거했다는 의미가 강하다. 큰 권력자가 없어지자 마치 후삼국시대 호족들처럼 사회 각 영역에서 작은 독재자들이 등장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관료제와 재벌은 제외되었다. 민주화 이후 관료제와 재벌은 더 이상 누구의 직접적 통제도 받지 않게 되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이 노동현장에 들어가 노조를 결성하려 했던 것은 노동자들만 위해서가 아니었다. 노동운동이 사회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라 믿었다. 결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거부하는 오늘날 대기업 노조를 예상하지는 못했다. 오늘날 힘 있는 사회 엘리트 집단들은 집단 이익 추구에 열심이다. 의사들이 그렇고, 언론사가 그렇고, 법조인들이 그렇고, 행정부 엘리트 공무원들이 그렇다. 집단과 개인의 사익 추구가 제1의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한 영역들이다. 세조는 자기가 죽은 후 자신의 공신들이 자신보다 오래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은 마치 훈구의 전성시대 같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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