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불안한 현실과 마주할 시간.. 3년 만에 개막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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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거리를 한 청년이 활보한다.
8일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One Escape at a Time)' 전시가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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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거리를 한 청년이 활보한다. 비닐 봉지를 씌운 긴 나무 막대기를 손 위에 놓고, 균형을 잡으며 묘기를 부리듯 걸어간다. 사람이 북적여야 할 거리가 조용한 건, 코로나19로 도시가 봉쇄됐기 때문이다. 중국 작가 리랴오는 팬데믹이 확산되던 지난해 초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이 같은 영상을 촬영했다. 작품 제목은 ‘모르는 채로 2020’. 작가의 행위는 불안,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일에 몰두하곤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8일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One Escape at a Time)’ 전시가 개막했다. 지난해 9월 예정됐던 게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되면서 3년 만에 열리게 됐다.
이번 전시는 ‘도피주의’에 착안해 기획됐다. 전시는 관람객에게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고 다른 생각을 하게끔 하는 ‘도피’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다양한 작가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며 사회정치적 사안에 개입하게 한다. 예술감독을 맡은 융마 전 파리 퐁피두센터 큐레이터는 “구조적으로는 관습에 충실하면서도 인종주의,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이민 등 사회가 직면한 긴급한 문제에 대해 다루는 미국 시트콤 ‘원 데이 앳 어 타임(2017~2020)’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도피를 넘어 현실에 직면할 수 있는 대화를 시작하는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1월 21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국내외 41명의 작가(팀)가 참여한 58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가들이 포착한 불안, 부조리와 마주하게 된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미네르바 쿠에바스의 대규모 벽화 ‘작은 풍경을 위한 레시피’는 동물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평화로운 산을 배경으로 한 그림 속에는 한 여성이 등장하는데, 동물 보호를 위해 애써온 영화감독 임순례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담겼다. 그림 우측 하단에는 스팸도 나오는데, 육가공 식품 산업의 문제를 꼬집고 있다.
2010년 결성돼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DIS’는 ‘절호의 위기’라는 영상을 선보였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악역 캐릭터가 월스트리트에 등장해 미국 주택 시장의 붕괴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밀레니얼의 낮은 소득으론 사실상 집 계약금 마련도 불가능한데, 오히려 밀레니얼이 내 집 마련에 관심이 없다는 손쉬운 주장만 팽배하지’와 같은 의미심장한 발언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국내 기업을 다룬 작품도 인상적이다. 1999년 결성돼 서울에서 활동 중인 ‘장영혜중공업’은 대기업을 소재로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다. ‘삼성의 뜻은 재탄생’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사무실에서 과로사로 죽은 삼성의 임원이 삼성 스마트폰으로 환생하는 등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며 끝나지 않는 삶을 이어간다는 구성을 바탕으로 한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작업들이 많다. LED스크린에 대기 오염도 측정기를 부착해 공기 오염도에 따라 노을과 바다의 색감이 달라지도록 설계, 환경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유리 패티슨의 ‘선_셋 프로_비전’, 가상의 신발 브랜드를 통해 강제적인 통일을 시각화한 동독 출신 작가 헨리케 나우만의 ‘프로토 네이션’, 무한 경쟁과 소외 등이 녹아 있는 인류의 역사를 자궁 속 태아가 엄마 배 속에서 영화를 보듯 시청하도록 꾸민 탈라 마다니의 영상 작업 ‘자궁’ 등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미술축제는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같은 날 청주공예비엔날레가 개막했고, 오는 10일에는 대구사진비엔날레가, 30일부터는 강원국제트리엔날레가 열린다. 지난 1일에 시작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진행 중이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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