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보수적 과도정부 발표..원리주의와 현실 사이 모색 계속될 듯
온건파와 강경파 사이 타협 산물 관측
각료들 기존 핵심 탈레반 인물 일색
"포용적 개방적 정부 추구" 애초 방향과 달라
대변인 "과도" 정부일 뿐 강조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파 탈레반이 7일 ‘아프간 이슬람 에미리트(토후국)’ 과도정부를 구성했다며 각료 명단을 공개했다. 면면을 보면 보수 강경파의 색깔이 강하지만, 탈레반 1차 집권(1996~2001년) 이후 20년에 걸친 ‘현실적 공백’을 외면할 수도 없어 원리주의와 현실주의 사이 정책 노선을 둘러싼 고민은 계속될 듯 보인다.
아프간 현지 언론 <톨로뉴스> 등에 따르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모하마드 하산 아훈드를 총리로 하는 과도정부 구성안을 발표했다. 지난달 15일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은 애초 3일께 새 정부 구성안을 밝힐 것으로 예측됐지만 발표가 늦어졌다. 그 때문에 상당한 내부 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다.
하산 아훈드를 총리로 내세운 카드는 탈레반 내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 ‘타협의 산물’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는 탈레반 1차 집권 때 외교부 부장관을 맡았던 인물로 군사보다 종교 분야에 영향력이 있다. 탈레반 내 ‘2인자’이자 이날 부총리로 지목된 압둘 가니 바라다르보다 지명도가 낮다. <비비시>(BBC) 방송은 “탈레반 강경파와 상대적 온건파가 내부 분쟁을 벌였다는 보도들이 있었다. 그의 (총리) 지명은 (그에 대한) 타협책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바라다르는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 종전 협상을 이끈 경험 등으로 인해 온건파로 꼽힌다. 또 다른 부총리는 파슈툰족이 다수인 아프간에서 소수민족인 우즈베크족 출신 압둘 살람 하나피가 임명됐다.
강경파는 실권을 쥔 모양새다. 탈레반의 강경파이자 국제 테러 조직으로 알려진 ‘하카니 네트워크’의 수장인 시라주딘 하카니는 경찰 등 치안 업무를 전담하는 내무장관에 임명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하카니가 지난 2008년 미국인을 포함해 6명의 희생자가 나온 카불 호텔 테러와 관련이 있다며 현상금 1000만달러를 내걸고 수배한 상태다. 탈레반 초대 지도자인 무하마드 오마르의 아들 야쿠브는 국방장관에 올랐다. 기존 아프간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나 여성은 이날 각료 명단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외신들은 탈레반이 카불 입성 뒤 밝혔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 구성” 계획과는 거리가 있다고 평했다.
탈레반 최고 지도자이며 공개적인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하이바툴라 아훈자다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모든 국민들이 이슬람 통치와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탈레반의 기본적인 방침은 20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다만 “이슬람 에미리트는 이슬람의 신성한 종교의 요구의 틀 안에서 인권과 소수민족의 권리, 소외된 집단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진지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변화 의지도 내비쳤다.
실제, 탈레반은 카불 입성 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을 통치의 기본으로 하면서도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20년 전처럼 여성 교육을 금지하는 대신, 교실에 커튼을 쳐서라도 남녀를 분리하고 눈만 노출할 수 있는 ‘니캅’을 입고 수업을 받으라는 식이다. 여성 취업도 샤리아 안에서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실권한 아슈라프 가니 정권에서 일했던 이들에 대한 사면령도 발표한 바 있다. 20년 전과 같은 극단적 샤리아 통치로는 국가를 운영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수용한 모양새다. 실제, 아프간 인구의 60%는 탈레반 통치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고, 여성들은 소수지만 이전과 같은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극단적 통치로 아프간 관료 기구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국가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탈레반이 원리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 어떤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아직 확신하기는 어렵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번 정부가 “과도 정부”일 뿐이라며 “아프간의 다른 부분에서도 사람들을 발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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