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와 아름다운 이별' 김태호PD의 독자노선이 의미하는 것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1. 9. 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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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PD마저.. 급변하는 플랫폼 환경 속 PD들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김태호 PD가 MBC를 떠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01년 입사 후 20년 동안 MBC에 몸 담아온 김태호 PD는 레전드 예능 <무한도전>을 13년 간 이끌며 국내 예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1년 간 휴지기를 가진 후 <놀면 뭐하니?>로 돌아와 '부캐 열풍'을 이끄는 등 큰 화제를 만들었다.

그 20년 간 미디어 환경은 계속 변했다. 2010년대 초반 tvN 같은 케이블 채널과 새로이 등장한 JTBC 같은 종편 채널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서 지상파3사의 스타 PD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KBS <해피선데이>는 이적한 스타PD들의 산실이었다. 이명한 PD, 나영석 PD, 신원호 PD가 CJ ENM으로 이적해 tvN 예능과 드라마를 이끌었고, 김시규 PD와 이동희 PD가 JTBC로 이적했다. MBC도 <황금어장>을 기획한 여운혁 PD가 JTBC로 이적해 <아는 형님> 같은 롱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연히 김태호 PD 역시 러브콜 1순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김태호 PD는 MBC를 떠나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 예능이었다. 만일 MBC를 나오게 되면 그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을 할 수 없다는 점이 김태호 PD를 움직이지 않게 만든 가장 큰 이유다. 그건 <무한도전>의 찐팬들 역시 원하는 바였다. 김태호 PD 없는 <무한도전>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버텨왔던 김태호 PD는 결국 2018년 <무한도전>의 시즌 종영을 선언했다. 그간 쉬지 않고 달려오며 지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그 종영의 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미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무한도전>식의 예능에 어떤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번 MBC를 떠난다는 공식 발표와 함께 SNS에 남긴 글에도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담겨있다. '나는 정작 무슨 변화를 꾀하고 있나?'라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나, "다양해지는 플랫폼과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을 보면서"라는 문구가 그렇다.

<무한도전>은 어쨌든 종영했고, <놀면 뭐하니?>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후배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런칭해 놓은 상황이다. 그러니 김태호 PD로서는 충분히 할 만큼 한 것이고, '출사표'를 던질 수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예능을 선제적으로 앞에서 이끌어온 김태호 PD로서는 OTT, 유튜브 같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그 변화 속에서 계속 지상파에 남아 '지상파용 예능'만을 만든다는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타 예능 PD의 또 다른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나영석 PD는 CJ ENM으로 이적해 tvN 예능을 주도하면서도 동시에 십오야 같은 유튜브 채널을 통한 '숏폼' 예능들을 계속 만들어 왔다. 하지만 지상파에 발이 묶여 있는 김태호 PD는 사정이 다르다. MBC라는 플랫폼에 걸맞는 예능 프로그램의 기획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김태호 PD가 넷플릭스에 후배들과 함께 <먹보와 털보>라는 신규 예능을 선보인다는 소식은 그가 가진 갈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어쩌면 지상파 예능 시대의 마지막 보루처럼 남아있던 김태호 PD의 이러한 선택은 지금의 달라진 콘텐츠와 플랫폼 환경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처럼 보인다. 즉 그의 선택이 이제 플랫폼(방송사)의 시대는 가고 대신 콘텐츠(스튜디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상징하는 사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나영석 PD도 아직 공식적으로는 CJ ENM 소속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우정 작가를 필두로 하는 외주제작사 에그이즈커밍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들을 양산하는 스튜디오 활동을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호 PD 역시 타 방송사 이적이 아닌 독립제작사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의 예능 PD들 같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이제 지상파, 케이블, 종편은 물론이고 OTT, 심지어 유튜브 콘텐츠까지 그 미디어 성격에 맞는 것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당연히 이 흐름 안에서 한 플랫폼(방송사)에 소속되어 그 틀에만 머무는 콘텐츠를 만드는 건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역량이 있는 PD들은 플랫폼 바깥으로 나와 다양한 콘텐츠들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스타 PD들이 방송사를 나와 독립적인 스튜디오를 차리는 건 그래서 단지 상업적인 욕심 때문만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 다양한 플랫폼에 어울리는 더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한계 없이 꺼내 보고픈 창작 욕구 또한 적지 않다.

그래서 김태호 PD는 오는 12월까지 MBC 예능본부에서 일하고 그 후 사원증을 반납한 후에도 밖에서 'MBC와의 협업'을 하고 싶다는 의중을 내놨다. 다양한 플랫폼 중 지상파도 하나의 가능성을 남겨 놓은 것이다. "세상에 나쁜 콘텐츠 아이디어는 없다. 단지 콘텐츠와 플랫폼의 궁합이 안 맞았을 뿐이다"라고 그가 후배들에게 해왔다고 한 말을 인용한 것에도 역시, 어떤 아이디어든 거기에 맞는 플랫폼을 찾아 빛을 보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그의 의지가 담겼다.

이제 방송사들조차 더 이상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 회사로 변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니 콘텐츠 제작자들은 과거의 플랫폼에 묶여 있기보다는 그 바깥으로 나와 더 넓은 가능성을 찾는 일이 생존의 길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김태호 PD의 이번 선택은 그래서 한 콘텐츠 제작자의 행보가 아닌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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