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도 도발, 뒤에는 미국 있었다[한국 역사를 바꾼 오늘]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전쟁 패배를 선언한 지 6년 1개월 만이요, 47년 3월 20일 조약 '밑그림'이 나온 지 4년 6개월 만이다.
조약의 1장은 전쟁 종료와 일본의 주권 회복. 2장은 한국 독립 인정과 한국 영토 포기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라 바로 2장에 나오는 '영유권 포기' 조항이다.
원문은 이렇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대한 모든 권리, 자격, 영유권을 포기한다."
일본은 바로 이 조항에 포기 대상으로 '독도'가 명시돼 있지 않아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입장이다.
1. 49년 10월 13일 초안, "독도는 한국 땅"
조약 체결 당사국은 일본과 연합국이었다. 연합국의 입장은 곧 미국의 입장이었다. 조약 초안도 미국이 작성했고, 다른 연합국들이 미국에 조약 관련 내용을 문의해갔다.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미국 국립문서보관청(NARA)의 미국 정부 기밀 해제 문서를 보면 1949년 10월 조약 초안(아래 사진)에는 일본의 영유권 '포기' 대상으로 독도가 명시돼 있다.
[미국 정부 기밀 해제 문서 다운로드]
이는 1943년 카이로선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카이로선언은 '일본이 불법 침탈한 영토 반환의 당위성'을 담은 미국, 영국, 중국 간의 합의다.
조약 초안은 한반도 및 그 도서들을 일본이 포기한다고 명시했다.
한반도 자체가 일본이 불법 침탈해간 것인 만큼 일본이 소유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함께 편입됐던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 등 섬들 역시 일본이 포기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2. 49년 12월 15일 수정안, "독도는 일본 땅"
그러나 이 초안이 나온 지 2개월 뒤인 12월 15일 작성된 수정안(아래 사진)에는 독도가 일본의 영유권 '포기' 대상이 아닌 '유지' 대상으로 바뀌어 있다.
불과 2개월 만에 독도가 한국 땅에서 일본 땅으로 둔갑된 셈이다.
초안에는 '패전국' 일본이 권리를 포기할 지명들이 기술돼 있는 반면, 수정안에는 일본의 권리가 명시돼 마치 일본이 '승전국'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대체 그 2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3. 맥아더 정치참모 '시볼드'의 암약 효과
실마리는 미국 국무부에 올라온 비밀전문에 있다.
11월 4일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의 정치고문인 윌리엄 시볼드가 보고한 문건이다.
조약 초안에 대한 맥아더의 평가와 시볼드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보고서다.
보고서의 골자는 조약 초안에 일본의 이익을 위축시키는 조항이 많으니 삭제, 수정, 재고하라는 것이다.
일본계 여성과 결혼한 시볼드는 특히 독도가 오래전부터 일본 땅이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일본의 독도에 대한 소유주장이 오래됐다'는 기술 자체가 거짓일 뿐 아니라, 카이로선언 등 이전 국제사회의 합의와도 배치되는 서술이다.
그럼에도 미 국무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조약 초안을 고쳐놓은 것이다.
4. 미국 1년 넘게 "독도는 일본땅" 입장 견지
이 같은 시볼드의 암약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국무부의 입장은 최소한 1년 가까이 유지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듬해인 1950년 10월 미국 정부가 호주 정부에 보내기 위해 작성된 문서에도 독도의 일본 이름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고 규정돼 있다.
당시 호주는 미국이 준비 중이던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의 원칙을 문의했었다.
그러나 이듬해 생성된 미국 정부의 조약 수정안들에는 일본의 독도 '포기' 문구가 다시 들어가 있다.
시볼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카이로선언의 취지를 백안시할 수 없었던 모종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5. 조약 최종안, 한국 영토 예시에 독도 누락
결국 조약 체결 3개월 전인 1951년 6월 14에 조약의 최종 수정안이 나온다.
우리나라 영토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49년 10월 13일 자 초안과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일본이 포기해야 할 우리나라 영토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만 나열돼 있을 뿐 독도는 쏙 빠져있다.
결국 이 한국 영토 부분은 그해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최종안으로 굳어진다.
일본은 바로 이 부분을 근거로 '조약 초안에는 독도가 일본의 포기 대상 영토로 명시됐다가 최종안에서 빠진 것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아전인수격 주장을 펼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서 독도 두 글자를 빼기 위해 일본과 미국이 어떻게 공조했는지 더 확인이 필요한 문제다.
6. "독도 문제는 미국 영향력에서 파생"
이처럼 독도 영유권 분쟁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매우 중요한 문제가 바로 미국의 역할이었다.
독도 연구 권위자인 이화여대 정병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독도 문제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파생된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도 힘이 없고 일본도 힘이 없으니까 미국에 의지해서 풀어보려고 했던 것"이라며 "미국이 결정한 바에 따라 지역의 정치 질서가 만들어지던 시절이었던 만큼 독도 문제 역시 미국의 (의사결정) 범위 안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미국의 독도 관련 의사결정이 동북아의 역학관계의 변화와 결부 지어서 봐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그는 "동북아 정치질서가 냉전 구도로 재편되면서 미국으로서는 (일본을 교두보로) 중국, 북한 등을 봉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일본과 맞닿아 있는 나라들이 모두 동아시아 국가들이니까 일본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영토문제를) 내버려 두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twinpin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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