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군대 폭력

김환기 2021. 9. 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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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회고담이다.

그가 1941년 해군 경리장교로 임관해 자대로 가자 상급 장교가 부하 지휘법을 강의했는데 내용이 황당했다.

"병영은 교도소와 지옥 사이에서 지옥 편에 더 가까웠다." 중국전선에서 5년간 복무한 일본군 병사 모리가네 센슈의 증언이다.

일본군의 구타 전통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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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회고담이다. 그가 1941년 해군 경리장교로 임관해 자대로 가자 상급 장교가 부하 지휘법을 강의했는데 내용이 황당했다. 상급 장교는 나카소네와 동기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주먹으로 턱을 때린 뒤 “이것이 하급자를 다루는 법”이라고 했다. 병사들의 충성심을 고취하고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구타를 묵인했던 일본군의 치부다. 해군에는 ‘군인정신 주입봉’이라는 구타 전용 몽둥이까지 있었다니 말 다했다. 육군이라고 달랐을까. “병영은 교도소와 지옥 사이에서 지옥 편에 더 가까웠다.” 중국전선에서 5년간 복무한 일본군 병사 모리가네 센슈의 증언이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던 작가 이병주도 “당시 학병의 뺨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일본군의 구타 전통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다. 해군이 크리켓 배트로 구타하던 영국 해군의 악습을 배워오자 육군도 뒤질세라 프러시아 육군의 구타술을 본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해군과 육군의 라이벌의식이 못 말릴 정도였다고 해도 구타까지 따라 하기 경쟁을 벌이나. 광복 후 일본군 출신이 한국군의 주축이 되면서 구타도 자연스럽게 이식됐다. 1970년대까지는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를 때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속옷에 피떡이 말라붙어 탈의할 때 고통을 겪었다는 전역자들이 많다. 필자가 군생활을 한 1980년대에는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는 사례가 많았다. 흔적을 덜 남기려는 고육책이었을 게다.

군내 폭력과 가혹 행위가 적나라하게 그려진 넷플릭스 드라마 ‘D.P.’(군무이탈체포조)가 흥행몰이를 하면서 국방부가 난감해하고 있다. 최근 군이 성추행 등으로 곤욕을 치른 상황에서 부정적 이미지가 더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국방부는 “폭행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병영 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해명했다. 선임병들에게 맞아 숨진 ‘윤 일병 사건’이 일어난 2014년에 비해 병영문화는 많이 개선됐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가 영화에 공감하는 걸 보면 국민 시선에선 아직 멀었다. 군이 폭력행위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한 강군은 어림없다. 국방부는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병영문화 정착을 위해 신발끈을 더 조여야 한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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