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보 걷기'는 일본 기업 상술?..그럼 몇 걸음이 건강에 가장 좋을까

이병문 2021. 9. 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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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거리며 걸으면 운동 안돼
'속보'로 걸어야 근육 활성화
운동효과 하루 7500보에서 정점
혈관 단단해지고 뼈 튼튼해져
고혈압·심뇌혈관·당뇨에 도움
치매·우울증·수면장애도 개선
복부비만 다이어트에도 '딱'
잘못된 자세는 어깨·무릎에 통증
허리 곧게 펴고 머리 세운 뒤
팔에 힘 빼고 크게 흔들며 걸어야
걷는 속도가 빠른 사람일수록
더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도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 찾아왔다. 그중 걷기는 돈 안 들이고 남녀노소 누구나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또한 '걷기는 가장 훌륭한 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운동 효과도 좋다. 걷기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으로 우리 몸의 100개 넘는 근육을 움직여 긴장을 풀어주고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켜 준다. 최근 들어 '맨발걷기'가 인기다. 맨발걷기는 발바닥의 생체 원리와 땅이 주는 지압·접지 효과가 상승 작용을 일으켜 면역력을 강화해 고혈압, 심뇌혈관, 당뇨, 아토피 등과 같은 각종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열풍이 불고 있다.

걷기는 무엇보다 혈관을 강하게 만들고 걷기만 해도 치매가 호전된다.

'혈관을 강하게 만드는 걷기' 저자인 일본 기즈 다다아키 키즈(KIZU) 카이로프랙틱그룹 대표원장은 "빠르게 걸으면 산소 소비량이나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고 골격근과 혈관에 적당한 부하가 가해져 여러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걷는 속도가 빠른 사람일수록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영국의학저널(BMJ)이 프랑스의 65세 이상 남녀를 5.1년간 조사해 보니 천천히 걷는 사람은 빠르게 걷는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약 1.4배, 특히 심장이나 혈관과 관련된 질병의 사망률은 약 2.9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걷는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는 횡단보도 신호로 판별할 수 있다.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1초에 1m' 속도로 걷는다는 것을 전제로 설치돼 있기 때문에 청신호로 바뀐 순간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해서 다 건너기 전에 신호등이 깜빡거린다면 보행속도는 느린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걷기 전도사 나가오 가즈히로 박사('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 저자)는 "걸으면 뼈가 튼튼해지고 나이가 들어 무릎이 쑤시거나 허리가 결리는 증상을 줄일 수 있으며, 치매도 예방할 수 있고 증상이 발현되더라도 걸으면 호전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기관지천식, 편두통, 면역계 질환, 불면증, 정신병 등 각종 질환도 걷기로 다스릴 수 있다. 나가오 박사는 '걷기만 해도 치매는 개선된다'라는 책에서도 "치매 예방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걷기이며 치매를 비롯해 우울증, 수면장애, 골다공증, 대사증후군 등을 예방 및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걷지 않으면 근육과 뼈가 급격히 쇠퇴하고 뇌 자극이 극단적으로 줄어 치매와 관련된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나가오 박사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하루 얼마나 걸어야 좋을까? 그동안 전문가들은 하루 1만보 이상 걸으라고 조언해왔다. 그러나 최근 1만보 걷기는 일본에서 1964년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업체들이 '만보계(萬步計)'라는 걸음 계측기를 팔아먹기 위한 상술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의 2019년 논문을 인용해 "하루 5000보 이상 걸으면 조기 사망 위험이 계속 떨어져 7500보에서 정점을 찍었다"면서 "1만보까지 걷는다고 해서 건강 이익이 계속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집안일이나 쇼핑 등으로 하루 약 5000보를 걷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 2000~3000보(1.6~2.4㎞)를 추가로 걸어 최적점으로 여겨지는 7000~8000보를 채울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가 공식 권고하는 육체 활동량은 하루 약 30분으로 이를 걸음걸이로 환산하면 2000~3000보에 달한다.

하루 1만보 걷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섭취한 하루 열량을 모두 소모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성인 남자는 음식을 통해 하루 평균 2500㎉의 열량을 섭취한다. 이 열량 가운데 우리 몸 자체의 기초대사에 약 1500㎉를 쓴다. 또 화장실에 가고 세수하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약 700㎉를 소모한다. 기초대사는 호흡, 혈액순환과 같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장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칼로리)를 가리키는 의학적 용어다. 섭취한 2500㎉ 중 기초대사와 일상생활을 하면서 쓰고 남은 열량은 약 300㎉다. 이 열량은 운동을 통해 소비해야 한다. 300㎉는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약 1시간 걸을 때 쓰이는 열량과 비슷하다. 성인은 걸음 보폭이 약 60㎝로 30보를 걸으면 1㎉가 소모된다. 일반 직장인들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하루 6000보를 걷는다고 가정하면 걷기로 하루 200㎉를 쓰는 셈이다. 남는 100㎉를 없애려면 3000보 이상을 더 걸어야 하는 데 시간으로 치면 15~20분 걸어야 한다.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 후 3000보에 해당하는 약 2㎞를 걸으면 100㎉를 소모할 수 있다.

미국 보건부는 2018년 11월 한 번에 2분 이상 걸으면 건강증진 효과가 있다는 '새 육체활동(physical activity)' 기준을 발표한 바 있다. 기존 기준은 한 번에 10분 이상 걸은 시간만 포함했다. 10분 미만의 짧은 걷기는 운동 효과가 없다고 봐서 여러 번 반복해도 걷기 시간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 기준은 인체 활동과 비활동의 경계선을 한 번에 2분 이상 걸었느냐 아니냐로 판단한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서 소변보고, 세수와 양치질, 식탁으로 가서 식사하거나, 현관 또는 마당에서 신문을 가져오고, 화분에 물을 주는 움직임은 걷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 동작에서 다른 동작으로 넘어간 횟수가 많지만 한 번에 2분 이상 걷지 않은 비활동성으로 운동이 아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출입구 먼 쪽에 차를 대고 2분 이상 걷거나 200m 떨어진 슈퍼마켓에 걸어가서 두부를 사 왔다면, 이는 활동성으로 운동이다.

걷기는 어슬렁거리며 그냥 걸으면 운동이 되지 않는다. 빠르게 걸어야(속보) 온몸의 근육이 활성화되면서 영양소나 산소 소비량이 현격히 늘어난다.

속보로 심장박동수가 평소보다 조금 오르게 되면 고혈압이나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그 이유는 속보를 한 후 혈관 내막에서 평소보다 빠르게 흐르는 혈액에 의해 자극을 받아 내피세포가 활성화되고, 혈관을 넓혀주는 일산화질소(NO)가 분비되기 때문이다. 속보는 일시적으로 혈압을 상승시키지만 혈관 상태를 개선해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속보는 복부 비만에도 효과가 좋다. 적당한 부하의 속보를 하게 되면 근육은 먼저 글리코겐 등을 연소시키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해지면 다음으로 지방을 연소시킨다. 이때 내장지방부터 연소시키기 때문에 비만이나 내장지방증후군 개선에도 효과적이다. 이는 지질의 대사 효율 개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혈액 안의 중성지방이나 LDL(저밀도 지방단백질)콜레스테롤을 줄여 지질이상증을 개선한다. 나에게 적당한 속보는 심장박동수를 계산해 알 수 있다.

걷기는 자세도 중요하다. 걷기는 잘못 걸으면 어깨, 목, 무릎, 허리에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박원하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 교수는 "걷기는 허리를 곧게 펴고 머리를 세운 다음 팔에 힘을 빼고 크게 흔들며 걷는 것이 좋다"며 "발은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게 하고 앞꿈치로 지면을 차듯이 전진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요령"이라고 조언했다.

걷기는 올바른 자세로 파워워킹을 해야 한다. 많은 걸음걸이(보행 수)보다 보폭을 넓혀 빨리 걸어야 운동효과가 크다. 걸을 때는 먼 곳을 바라보듯이 고개를 곧게 세우고 걷는다. 고개를 앞으로 숙인 거북목 자세로 걸으면 목에 큰 부담을 준다. 걸을 때 배를 내밀고 상반신을 젖힌 채 파워워킹을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배를 집어넣고 등을 편 채로 걷는다. 상반신 무게는 체중의 약 60%로 서 있거나 걸을 때 이 무게가 고스란히 허리를 짓누른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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