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냉동 난자 55년까지 보관 허용..출산시기 선택 확대 신호탄될까

이현경 기자 2021. 9. 7. 16: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험관 아기' 기술 종주국
픽사베이 제공

영국 정부가 최장 10년까지만 허용했던 여성의 냉동 난자 보관 기간을 최장 55년까지 늘리기로 했다. 또 남성의 정자, 배아도 55년간 냉동 보관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체외수정(IVF)을 이용해 시험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기회가 대폭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BBC와 가디언 등 영국 주요 매체들은 6일(현지시간) 영국 정부가 난자와 정자, 배아(수정란)를 55년간 냉동 보관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는 질병으로 임신이 어렵다는 점을 의학적으로 입증한 경우에만 55년까지 난자를 보관하도록 허용하고 그렇지 않은 여성의 냉동 난자는 10년이 지나면 폐기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개정된 법안은 일단 냉동된 난자와 정자, 배아는 10년마다 폐기 여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최장 55년까지 보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75세 남성이 20세 때 냉동시킨 정자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영국은 1990년부터 법으로 여성의 냉동 난자 보관 기간을 최장 10년까지 제한했다. 난자 보관 기술, 보관 비용, 출산율을 고려한 이른바 ‘사회적 기준’에 따른 결정이다. 하지만 난자 냉동 기술 발전과 여성의 출산 시기 선택권 확대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2019년부터 영국 정부는 기간 연장 검토에 들어갔고 지난해 국민 의견 수렴을 거쳤다. 

영국 너필드 생명윤리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난자 냉동 기간 연장과 관련한 기술적, 법적, 윤리적 제반 사항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지난해 9월 ‘영국의 난자 냉동’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영국에서 난자 냉동에 대한 관심과 활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보관 기간을 늘리는 데 반대하는 주장은 거의 없다”며 사실상 기간 연장에 찬성했다. 

전문가들도 기존에 10년이라는 기준이 과학적 근거 없이 임의로 정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영국 정부에서 체외수정 관련 법안을 담당하는 정부의 녹워드위원회는 냉동 배아 사용의 위험성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고, 부부가 사망이나 이혼, 별거 등으로 배아를 처분할 때 법적,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다소 불명확한 이유로 10년이 적합하다고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영하 210도의 액체질소에서 난자를 급속 냉동하는 유리화동결법이 개발되면서 난자 냉동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고 강조한다. 유리화동결법을 이용하면 냉동 난자를 해동했을 때 난자 생존율을 90%까지 높일 수 있다. 또 냉동 난자의 수정률이나 임신율도 신선 난자와 비슷한 수준까지 발전했다. 

영국 의료윤리감독기구인 인공수정배아관리국(HFEA) 줄리아 체인 국장은 BBC에 “여성의 난자는 일찍 얼릴수록 체외수정을 통한 임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난자, 정자, 배아의 보관 한도를 연장해 과학의 발전과 현대 사회의 변화, 개인의 생식 선택에 따라 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난자 냉동에 적합한 최적의 나이는 35세 이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국에서 난자 냉동을 하는 여성의 평균 연령은 이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HFEA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영국에서 5만4000명이 체외수정을 위해 난자 6만8724개를 냉동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35.3세, 출산 성공률은 평균 23%였다. 체외수정 성공률은 35세 미만에서 31%로 가장 높았고, 1991년 9%에 비해서는 큰 폭으로 올랐다. 또 35~37세는 25%, 38~39세는 19%, 40~42세는 11%로 조사됐다. 

영국은 체외수정 기술 종주국으로 불린다. 로버트 에드워즈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1950년대 초 체외수정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해 1978년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공로로 201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에드워즈 교수는 2013년 별세했다. 

1970년대 인공수정은 불임부부에게는 축복이라는 지지와 동시에 종교적, 윤리적으로는 논란을 일으켰다. 또 아이가 정상인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에드워즈 교수에 의해 세계 최초로 태어난 시험관 아기인 루이스 브라운은 2004년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9년 처음으로 체외수정을 이용한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의학계에서는 난자 냉동 보관 기관과 관련해 과학적인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10년 이상 난자를 보관해도 사용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산모와 아기의 건강, 성공률 등을 고려해 37세 이전에 난자를 채취하고 43세 이전에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