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인사이트] "북한에 미군 무기 안 팔아"..'탈레반의 입'은 한국 문제에 뭐라고 답했나
BBC 앵커에게 생방송 도중 직접 전화했었던 '탈레반의 입' 수하일 샤힌
수하일 샤힌은 우리 사투리처럼 약간 구수하게 들리는 아프간 특유의 악센트가 섞인 영어로 거침없이 탈레반의 입장을 설명합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적도 없고, 서방 매체 기자들의 질문을 끝까지 듣고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곤 했었습니다. 그를 인터뷰 했던 BBC 기자는 "샤힌은 당신이 탈레반의 대변인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고 진단하며 "침착하고, 예의 바르고, 질문에 답변할 준비가 돼 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 언론만 빼고 어떤 언론도 상대한다"…'왓츠앱'으로만 답하는 샤힌
워싱턴 주변을 수소문해보니 미국인들 가운데는 확실히 탈레반과 접촉하는 루트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연락처 몇 개를 받아 대서양에 편지 담은 와인병을 띄워 보내는 심정으로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일부는 틀린 번호로 확인이 됐지만, 번호 한 개가 이상할 정도로 답이 없었습니다. 휴대폰과 SNS 메시지에 뜨는 모든 수단으로 연락을 했는데, 아프간인들이 많이 쓴다는 왓츠앱은 메시지를 읽기는 하고, 답은 안 주고 있었습니다. 딱히 반응도 없이 그렇게 시간이 꽤 지나가버렸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계속 메시지를 보냈더니 어느 날 벼락같이 "연락 줘서 고맙다. 인터뷰 할 수 있는 일정을 주겠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게 샤힌이라고 100%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일단 스케줄을 달라고 하고 또 시간이 지났습니다.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그냥 본인이 답을 줄 수 있을 때 주는 상황이어서 더 답답했습니다. 인터뷰 시간을 몇 번 잡기는 했지만, 그때도 실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샤힌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 인터뷰는 헛심만 쓰고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2시간 내에 인터뷰 가능할지 확인해주겠다"고 또 답이 돌아왔습니다. 약간의 오기도 생기고, 이 번호 주인의 얼굴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스탠바이 하고 있으니 준비되면 연락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더니 "15분 뒤에 하자"고 최종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미 그 시간 카타르 도하는 자정에 가까운 아주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화상 통화를 위한 링크를 미리 보내줬는데, 미국 취재원들처럼 샤힌은 그걸 사용하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화면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는데 이미 여러 차례 다른 인터뷰에서 봤던 탈레반 대변인 수하일 샤힌이 정확히 맞았습니다. 탁자에 탈레반 국기가 있고, 외신들을 상대하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그는 "다른 매체 인터뷰도 많았지만, 내부 회의와 대표부 회의까지 너무 많은 일정이 있어서 당신 인터뷰 일정을 확정할 수가 없었다"고 멋쩍게 웃으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내각 구성을 앞두고 탈레반이 내부 권력 다툼으로 극도의 혼란 상태인데, 도하에 있는 샤힌도 그런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북한에 무기 팔지 않는다"…"재건의 역사 가진 한국 도움 절실"
우리가 관심 가질 내용 가운데 그동안 서구 언론에 나오지 않은 탈레반의 입장은 한국과 북한에 대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자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미군이 남기고 떠난 천문학적인 무기에 대한 질문은 꼭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국방장관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 아프간에 남겨진 미군 무기가 중국, 북한 등 적대 국가에 들어가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질의를 한 바 있습니다. 이 의혹 제기를 샤힌 대변인에게 그대로 물어봤는데, 답변이 명확했습니다. 미국 의원들의 주장은 그저 근거 없는 추정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무기는 아프간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북한에 절대로 무기를 팔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북한과 어떤 관계인지, 탈레반 정부 구성 이후에 북한과 접촉했는지도 물어봤습니다. 샤힌 대변인은 자신이 아는 한 탈레반은 북한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아프간 개발에 한국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대놓고 말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아프간처럼 한국도 전쟁으로 파괴된 역사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한국도 국가 재건을 하면서 경험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한국이 도움을 준다면 환영하고 감사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경제 재건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원한다는 것이냐고 다시 확인해보니, "그럼 왜 마다하겠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한국은 아프간에서 대사관을 철수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자신들이 대사관의 안전을 보호할 것이라고 이미 발표했다면서, 이미 아프간 사업가들이 한국에서 직물, 자동차 등을 들여오면서 경제적으로도 가까웠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습니다. 한국으로 출국을 원하는 아프간인도 적법한 서류를 가지고 있다면 허락하겠다는 것도 확인해줬습니다. 샤힌 대변인은 나가는 것도 자유지만 들어오는 것도 자유라는 걸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왕래가 자유롭게 되는 건 당연하기 때문에 탈레반 정부는 정상 국가라는 걸 강조하면서 나온 발언으로 이해했습니다.
샤힌 대변인은 경제적인 위기를 털어놓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아프간 국민의 70%가 빈곤 상태에 있으며, 중앙은행인 아프간은행 자금이 동결돼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도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앞으로 댐, 철도 등을 건설하는 대규모 사업이 필요한데, 다른 나라와 손잡고 진행할 거라는 계획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도움과 경제 개발 참여를 요구하는 취지의 인터뷰는 다른 나라 매체와 할 때도 이미 여러 차례 반복한 바 있습니다. 수중에 돈이 거의 없는 탈레반 정부는 고난의 행군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여기저기 해외 자금을 어떻게든 유치해 살길을 찾아보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던 대목입니다.
故 윤장호 하사 · 샘물교회 피랍 살해…사과할 생각 있냐고 물어보니
샤힌은 당시 아프간 국민 수십만 명도 점령군에 살해당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빠져나갔습니다. 점령당했던 아프간은 점령군 일원이었던 한국보다 더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 했습니다. 샤힌 대변인은 한국과 관련된 사건을 들어서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세부 사항은 잘 모른다고 말하면서, 과거 탈레반이 행한 테러행위에 대해서는 직접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IS-K에 조치를 취할 것…알카에다가 아프간을 테러 거점으로 삼지 못할 것"
"중국은 당장 아프간에 큰 도움"…"미국 도움도 마다하지 않아"
다만 미국에 대한 감정의 앙금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군 장비를 비롯해 아프간 사람들의 재산을 너무 많이 파괴했다며, 이것은 아프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장비를 많이 놓고도 갔지만, 짧은 시간을 이용해 탈레반이 쓰지 못하게 상당히 노력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탈레반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슬람 가치는 지키겠다는 게 목표"
수하일 샤힌의 말로 탈레반의 전모를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정상 국가의 모습으로 아프간의 지배세력이 되려는 영리해진 탈레반의 모습이 샤힌을 통해 투영됐다고 이해하는 게 더 맞을 듯합니다. 그들이 저지른 수많은 잘못이 있지만, 과거처럼 철권 폭압정치로는 더 이상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갖게 된 건 분명했습니다. 인남식 교수도 "탈레반도 더 이상 반군이 아니라 집권세력이 됐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라며 "국가를 운영할 만한 재원과 인사 운영을 하지 않으면 탈레반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앞으로 아프간은 거대한 불확실성이 넘실거리는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극단주의자들과 탈레반 정부가 국정 주도권을 쥐기 위해 권력 투쟁을 벌일 가능성이 매우 크고, 탈레반 지도부조차 이견과 갈등(심지어 내부에서 총격전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이 표출되는 상황입니다. 아프간 전체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탈레반이 우리 정부에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한 것은 앞으로 혹시 우리가 아프간과 관련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형 기자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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