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권의 뒤땅 담화] 스윙 알면 80대, 잔디를 알면 싱글

2021. 9. 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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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예약이 되면 어떤 종류의 잔디가 깔려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일찍부터 생겼다.

골프에 입문할 때부터 페어웨이에 깔린 잔디 종류에 따라 스코어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솔직히 서양 잔디보다는 한국 잔디를 사용하는 골프장이 쉽고 점수도 잘 나왔다. 한국 잔디가 골프채를 휘두르기에 훨씬 편했다.

요즘은 다운블로(찍어치기)도 약간 구사할 줄 알아 잔디 차이에 따라 큰 굴곡이 없지만 골프 입문 당시엔 공을 쓸어치기만 했다. 당연히 지면에서 꼿꼿하게 자란 한국 잔디 위에서 공을 치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공이 잔디 위에 붕 떠 있어 두껍게 맞아도 클럽이 미끄러지면서 공에 타격을 가해 비거리 손실이 많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뒤땅(팻샷)을 해도 공은 일정 탄도를 유지하면서 날아갈 수 있었다.

특히 우드를 사용하기엔 한국 잔디가 최상이었다. 초기엔 우드를 잘 다룰 줄 몰라 사용을 꺼렸는데 한국 잔디에선 마음 놓고 휘둘렀다.

서양 잔디는 달랐다. 양탄자 같이 부드러운 서양 잔디에선 정확한 타격이 필요했다. 클럽이 공보다 조금만 뒤에 맞아도 두꺼운 뗏장이 일어나면서 민망함과 허탈감에 빠진다.

제대로 맞히려고 용을 쓰다 보면 이번엔 토핑으로 이어져 뱀처럼 공이 굴러간다. 클럽에 가해진 충격으로 손도 아프다.

미스 샷을 거듭하다 보니 서양 잔디에 대한 울렁증도 생겼다. 나에게 양탄자 같은 서양 잔디는 걷기엔 좋지만 점수를 내기엔 반갑지 않았다.

그린 주변에선 잔디 종류에 따라 난이도가 더욱 달라진다. 서양 잔디의 경우 어프로치를 시도해 공을 그린에 올리기가 무척 어렵다.

공이 거의 바닥에 붙어있어 지금도 이런 상황에 처하면 쩔쩔 맨다. 헤드 스피드를 높이면서 정확하게 임팩트를 가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 너무 불안하다.

결국 토핑이나 뒤땅 참사를 부른다. 궁여지책 아이언으로 굴리는 습관이 붙었다.

골프장에선 잔디가 생명이다. 코스 전체가 잔디로 이뤄져 있고 잔디 관리로 골프장의 등급이 매겨진다. “골프하러 간다”는 말 대신 “잔디 밟으러 간다”는 표현에서 ‘골프장=잔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잔디(고려지), 들잔디(야지)로 대표되는 한국형 잔디는 고온다습한 여름철에 강한 특성을 지녀 난지형 잔디로 불린다. 대부분의 골프장이 이 잔디를 사용한다. 금잔디는 잎이 가늘고 추위에 약해 주로 남쪽 지방 골프장에 많이 사용된다.

한국 잔디는 잎줄기가 강하고 꼿꼿해 공을 떠받치는 힘이 좋고 발로 밟아도(답압) 잘 견딘다. 여름 전후 5개월간 공을 치기에 최상이지만 온도가 내려가면 색깔이 변하면서 힘을 잃는다.

이를 보완해 안양 중지 등 교배육종이 나와 있는데 4월부터 녹색을 띠고 자라다가 7~8월에 왕성하게 자란다. 더위와 건조에 강한 버뮤다 그래스라는 난지형 잔디도 골프장에 많이 쓰이는데 생장 속도와 회복 능력이 우수하다.

서양 잔디는 양잔디로도 불리는데 겨울철에도 녹색을 띠는 추위에 강한 한지형 잔디다. 잎이 가늘고 밀도가 높아 한국 잔디에 비해 절반 이상 짧게 깎을 수 있다.

습도가 높고 더운 여름철엔 성장이 느려지고 힘이 약해 물러지거나 고사하기 쉽다. 공이 땅에 거의 달라붙어 정확한 임팩트가 요구된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고 촘촘하게 형성돼 디벗 자국이 크고 선명하게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종류로 캔터키블루그래스가 있고 톨 페스큐, 파인 페스큐 등이 있다.

켄터키블루그래스는 페어웨이와 티잉 구역에 폭넓게 활용되고, 가장 품질이 좋은 벤트그래스는 그린에 주로 사용된다. 잎이 매우 가늘고 촘촘해 짧게 깎아 그린 스피드를 높인다.

고온다습한 한국에선 관리유지비용이 많이 소요되는데 일부 골프장에선 페어웨이에도 사용한다. 1년간 관리비용이 한국형 잔디보다 5억원 이상 높다고 한다.

러프에는 페스큐라는 서양 잔디가 주로 사용된다. 마치 잡초처럼 보이는데 입이 길고 촘촘하게 자란다. 여기에선 정확하게 내려치는 게 중요한데 무리해서 그린에 공을 올리기보다 탈출을 목표로 하는 게 현명하다. 체중을 왼발에 70% 이상 싣고 강하게 다운블로 샷을 구사해야 한다.

“스윙을 알면 80대, 클럽을 알면 싱글, 잔디를 알면 언더파를 친다.” 골프계에 나도는 말이다.

▶그린 스피드 왜 중요할까

“퍼팅을 잘한다”라는 말은 ▲거리감 ▲경사 등 라인 읽기 ▲볼 스트로크 ▲그린 스피드 적응 등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모든 능력을 가진다면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한 가지 능력만 제대로 갖춰도 퍼팅 실력자가 될 수 있다.

이 가운데 그린 스피드는 잔디와 직결돼 있다. 아마추어 고수들과 프로선수들은 그린 스피드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린 빠르기를 나타내는 그린 스피드에 따라 퍼팅 강도와 백 스윙 크기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옆 경사면에선 곡률 반경을 크게 해서 공을 태울 것인지 직선에 가깝게 세게 스트로크할 것인지도 그린 스피드에 좌우된다.

그린 스피드란 같은 시간에 얼마만큼 공이 갔느냐를 말한다. 이슬에 젖은 아침과 낮, 오후 등 시간대에 따라 다르고 골프 직전이나 전날 비가 왔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퍼팅하는 곳에서 볼 때 잔디 결이 순방향인지 역방향인지에 따라서도 그린 스피드는 달라진다. 핀까지 같은 거리, 같은 힘으로도 지난 홀에선 공이 들어갔는데 이번 홀엔 짧았다면 잔디가 역결일 가능성이 높다.

거리가 짧은데도 공이 휘어지거나 홀을 비켜 갈 때도 역결을 의심해야 한다. 이럴 경우엔 좀 더 세게 치는 게 좋다. 잔디가 그린의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짙은 녹색이면 역결, 연하면 순결로 보기도 한다.

평균 그린 스피드를 잘 감안해야 그린에서 퍼팅 개수를 줄일 수 있다. 골프장에 도착해 연습 그린에서 퍼팅 연습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골프장 측은 연습그린과 정규그린의 상태를 유사하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홀마다 동일한 그린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원칙이다.

모든 그린을 동질 수준으로 유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린마다 스피드 차이가 너무 커 퍼팅하는 데에 애로를 겪는다면 곤란하다. 비슷한 거리에서 동일한 힘으로 퍼팅을 했는데 공 굴러가는 거리의 차이가 심하면 양호한 골프장으로 볼 수 없다. 홀 간 그린 스피드 차이가 15㎝ 이내로 유지될 것을 권장한다.

그린 스피드는 스팀프미터(Stimpmeter)라는 도구로 측정한다. 알루미늄 소재로 만든 홈통 모양 막대(1m)의 밑부분에서 85㎝ 정도에 홈이 패 있다.

이 홈에 공을 올려놓고 막대 윗부분을 지면에서 20도 정도까지 서서히 올리면 중력에 의해 공이 경사를 타고 내려간다. 지면에 닿아 굴러간 거리로 그린 스피드를 측정한다(네이버 지식백과).

2.5m 굴러갔으면 그린 스피드는 2.5, 2.8m이면 2.8로 나타낸다. 그린 스피드는 그린에서 평평한 곳을 골라 측정하는데 3개의 공을 굴린다. 반대편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측정해 평균값으로 정한다.

보편적인 골프장의 그린 스피드는 2.2~3.0이며 KPGA 정규투어 시합 땐 3.5 이상까지도 측정된다. 이슬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그린 스피드는 0.2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린 스피드는 잔디의 생육과 양립불가(Trade-off)의 관계를 맺고 있다. 스피드를 높이면 잔디의 생육조건이 나빠지고 생육조건을 좋게 하면 그린 스피드가 나빠지기 때문이다.

스피드 킬(Speed Kill)이란 말이 있다. 그린 스피드를 너무 좋게 하면 3퍼트, 4퍼트로 골퍼들이 죽어나고 이를 관리하는 사람도 스트레스로 혹사한다는 표현이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2호 (2021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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