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극한 사랑에 관한 소설"

이승우 2021. 9. 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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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나를 고통으로부터 구해줘..지극한 사랑의 상태에 이르려 노력"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어떨 때는 지극한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대답했고, 어떨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라고 얘기했고, 어떨 때는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말을 고르고 싶고, 이 소설을 쓰면서 그 상태를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한강이 7일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서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에 대해 스스로 내린 소설적 정의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광주 5·18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에서 보여준 작가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지만, '소년이 온다'를 쓸 때는 심적으로 힘들었던 데 반해 이 소설을 쓰면서는 자신을 치유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 악몽을 꾼 게 사실이고, 저도 변형됐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쓴 이후 저의 삶은 이전과 다른 것이 됐습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는 이상하게도 저 자신이 많이 회복됐어요. '소년이 온다'를 씀으로써 내 삶의 어떤 부분에 악몽이나 죽음이 깊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 소설을 건너면서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을 쓰는 건 고통도 있었지만, 오히려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해준 경험이었습니다."

소설은 비극적 역사를 여인 세 명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여성 서사다.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집에 가서 어머니 정심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다.

한강은 화자인 경하에 어느 정도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냐는 질문에 "다 내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지극한 사랑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쓴 시간이 고통스러웠다기보다 내가 간절했다는 마음이 들고 이 소설이 나를 구해줬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또 '지극한 사랑'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비극의 현대사를 관통한 인물인 '정심'과 자신을 동일시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한강, 신간소설 출간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소설가 한강이 7일 신간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을 기념해 온라인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2021. 9.7. [문학동네 제공. 재배포 DB 금지]

애초 '눈' 3부작의 완결편으로 구상했던 이 소설은 처음부터 4·3을 소재로 삼으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한강은 "어떤 모티프가 떠오르고 어떤 장면이 떠올라서 어떤 소설이 될지, 스스로도 알고 싶어지고, 그러다 문득 이런 거였구나, 이런 의미였구나, 내 소설은 여기로 가는 거구나 알게 되는 이상한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온전히 의도한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 이상한 각성의 순간 같은 것"이라며 "제주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관해서 쓸 마음이 없었는데,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사실 이 소설의 첫 두 쪽은 지난 2014년 6월에 써놓은 것으로, 당시 꾸었던 5·18에 관한 이미지의 꿈 내용을 옮긴 것이라고 한강은 전했다. 이후 좀처럼 진전이 되지 않다가 2018년 12월 마지막 주에 다시 그 뒤를 채워간 끝에 2019년부터 계간지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가 두 페이지에 그친 채 오랫동안 방치했던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후반 제주에서 월세를 얻어 살 때 주인집 할머니가 들려줬던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면서다. 꿈의 내용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연결하면서 소설 쓰는 일이 재개됐다고 한다.

이밖에 한강은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에 대해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다"면서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극한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 악수와 포옹을 하지 못하는 시절을 아직도 통과하고 있는데,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면서 "이 고독과 고립을 통해 오히려 간절하게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방에, 우리의 개인사에 우리 삶이 갇히는 게 아니라 그 밖으로 뻗어나가서 우리 몸이 닿지 않더라도 우리 삶에만 갇히고 싶어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편 한강은 최근 국내 소설이 외국에 소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이 소개되고 번역되고 읽힐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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