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극한 사랑에 관한 소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어떨 때는 지극한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대답했고, 어떨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라고 얘기했고, 어떨 때는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말을 고르고 싶고, 이 소설을 쓰면서 그 상태를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한강이 7일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서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에 대해 스스로 내린 소설적 정의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광주 5·18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에서 보여준 작가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지만, '소년이 온다'를 쓸 때는 심적으로 힘들었던 데 반해 이 소설을 쓰면서는 자신을 치유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 악몽을 꾼 게 사실이고, 저도 변형됐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쓴 이후 저의 삶은 이전과 다른 것이 됐습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는 이상하게도 저 자신이 많이 회복됐어요. '소년이 온다'를 씀으로써 내 삶의 어떤 부분에 악몽이나 죽음이 깊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 소설을 건너면서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을 쓰는 건 고통도 있었지만, 오히려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해준 경험이었습니다."
소설은 비극적 역사를 여인 세 명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여성 서사다.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집에 가서 어머니 정심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다.
한강은 화자인 경하에 어느 정도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냐는 질문에 "다 내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지극한 사랑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쓴 시간이 고통스러웠다기보다 내가 간절했다는 마음이 들고 이 소설이 나를 구해줬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또 '지극한 사랑'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비극의 현대사를 관통한 인물인 '정심'과 자신을 동일시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애초 '눈' 3부작의 완결편으로 구상했던 이 소설은 처음부터 4·3을 소재로 삼으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한강은 "어떤 모티프가 떠오르고 어떤 장면이 떠올라서 어떤 소설이 될지, 스스로도 알고 싶어지고, 그러다 문득 이런 거였구나, 이런 의미였구나, 내 소설은 여기로 가는 거구나 알게 되는 이상한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온전히 의도한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 이상한 각성의 순간 같은 것"이라며 "제주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관해서 쓸 마음이 없었는데,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사실 이 소설의 첫 두 쪽은 지난 2014년 6월에 써놓은 것으로, 당시 꾸었던 5·18에 관한 이미지의 꿈 내용을 옮긴 것이라고 한강은 전했다. 이후 좀처럼 진전이 되지 않다가 2018년 12월 마지막 주에 다시 그 뒤를 채워간 끝에 2019년부터 계간지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가 두 페이지에 그친 채 오랫동안 방치했던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후반 제주에서 월세를 얻어 살 때 주인집 할머니가 들려줬던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면서다. 꿈의 내용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연결하면서 소설 쓰는 일이 재개됐다고 한다.
이밖에 한강은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에 대해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다"면서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극한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 악수와 포옹을 하지 못하는 시절을 아직도 통과하고 있는데,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면서 "이 고독과 고립을 통해 오히려 간절하게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방에, 우리의 개인사에 우리 삶이 갇히는 게 아니라 그 밖으로 뻗어나가서 우리 몸이 닿지 않더라도 우리 삶에만 갇히고 싶어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편 한강은 최근 국내 소설이 외국에 소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이 소개되고 번역되고 읽힐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leslie@yna.co.kr
- ☞ "40년간 잠 안잤다" 중국 여성 미스터리 풀렸다
- ☞ 34m 지하로 수직 추락하는 놀이기구 탄 6살 아이 사망
- ☞ 연인 감금하고 몹쓸 짓…경찰, 20대 남성 긴급체포
- ☞ "난 대만 독립론자 아냐"…中 칼바람에 고개숙인 대만 스타
- ☞ 방송인 에이미도…200억 상당 마약 밀매 조직 검거
- ☞ 베트남 공안, 한국인들에 '생트집'…버스안에 9시간 갇혀
- ☞ 월급 143만원 태국 부패 경찰 '조 페라리', 재산이 무려 214억원
- ☞ 60대 남성은 왜 여장하고 마른 고추를 훔쳤나
- ☞ 이마에 270억 다이아 박았던 래퍼…팬들 향해 뛰어들었다가
- ☞ 남녀구분해야…아프간 대학 강의실 한가운데 등장한 커튼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검찰 "구영배 '뽑아갈 것 뽑자' 지시…미정산 위기 2년전 예견" | 연합뉴스
- 소주 4병 마셨다는 '묻지마 살해' 박대성…경찰 "2병만 마셔" | 연합뉴스
- 티아라 지연과 야구선수 황재균 파경…"다툼 극복 못 해" | 연합뉴스
- 與, 문다혜 음주운전에 "아버지는 음주운전이 살인이라 했는데"(종합) | 연합뉴스
- 한강서 전복 위험 보트·뗏목 타고 있던 4명 구조(종합) | 연합뉴스
- 300여㎞ 택시 타고는 '먹튀'…요금 달라는 기사에 주먹질한 50대 | 연합뉴스
- 트럼프 옆에 선 머스크…'화성 점령' 티셔츠에 MAGA 모자도 | 연합뉴스
- "누나 집에서 좀 재워줘" 여경 성희롱한 해경…"파면 적법" | 연합뉴스
- 만취 행인 스마트폰 지문인식해 2천550만원 빼낸 30대 징역5년 | 연합뉴스
- 방글라서 8개월간 벼락에 300명 사망…"절반 이상 농민"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