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구함 "세상 메치려, 일곱번째 무릎 수술 받으러 갑니다"

김상윤 기자 2021. 9. 7. 04: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쿄의 추억] 유도 100kg급 은메달리스트
"금메달 눈앞에서 놓치고 나니
꼭 따고 싶다는 생각 강해져 파리올림픽 꿈꾸게 됐어요"

“일본 편의점 직원이 저를 보고 ‘어, 조구함?’이라고 하더니 ‘같이 사진 찍어달라’고 하더라고요. 귀국 날 공항과 비행기에서도 항공사 직원들에게 사진 요청을 받았어요.”

유도 남자 100kg급 국가대표 조구함(29·KH그룹 필룩스)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일본에서도 유명 인사가 됐다. 미·일 혼혈 선수 에런 울프(25·일본)와 벌인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한판패를 당한 뒤 울프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려준 것 때문이다. 조구함은 앞서 준결승에선 호르헤 폰세카(29·포르투갈)가 손에 쥐가 나 고통스러워하자 이를 기다려주기도 했다. 당시 일본 뉴스 기사에선 “조구함의 스포츠맨십에 감동했다”는 댓글들이 추천 수만개를 받았다. 경기 다음 날, 각국 수퍼스타들이 이용하는 올림픽 선수촌 편의점에서도 직원이 조구함을 알아보고 선물로 인형을 건넸다고 한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도쿄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조구함은 벌써 “3년 후 파리올림픽에서 세상을 메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일곱 번째 무릎 수술을 앞두고 있다. /박상훈 기자

한편 유도계에선 ‘울프가 결승에서 조구함의 공격을 방해하고도 지도를 받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조구함은 상대의 실력과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울프가 2년 전 세계선수권 때보다 강해졌고, 저를 많이 연구하고 왔더라고요. 그가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금메달을 땄다면 저렇게 눈물 흘렸을 것 같다. 축하해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승님들께서 ‘인성이 완성되지 않으면 선수로서 가치가 없다’고 강조하셨는데, 유도 후배들도 제 모습을 보고 항상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곧 일곱 번째 무릎 수술…8년 전 20kg 체중 감량도

조구함은 “귀국 후엔 방송 촬영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그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인 순댓국을 일주일에 4~5번씩 먹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곧 오른쪽 무릎 속 연골 조각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대에 오른다. 그의 왼쪽 무릎에는 핀이 박혀 있고, 오른쪽 무릎엔 연골이 거의 없다. 훈련이나 경기를 앞두고선 스스로 40여분 동안 무릎에 깁스 수준으로 테이프를 감는데, 그 실력에 진천선수촌 의료진도 깜짝 놀랄 정도다. 조구함은 “이번 수술로 테이핑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무릎 수술을 받는 건 이번이 일곱 번째다. 체중에 비해 키가 작은(177㎝) 데다, 어렸을 때 욕심에 업어치기를 지나치게 많이 연습한 게 화근이 됐다고 한다. 수년 전 무제한급에서 100kg급으로 체급을 낮추며 몸무게를 약 20㎏ 빼느라 무릎을 지탱하던 근육이 줄기도 했다. 이런 때문인지 조구함은 은메달을 목에 건 뒤 유독 많은 ‘박사님’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제가 몸이 이래서인지 국가대표 선수들을 지원하는 스포츠정책과학원 박사님들하고 친해요. 하하. 제 몸이 거의 연구 대상이에요. 어떻게 운동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은메달을 따는 순간 재활 운동을 가르쳐주신 김태완 박사님(책임연구위원)과 식단과 심리 케어를 해주신 송홍선 박사님이 떠올랐고, 2016년 십자인대가 끊어졌을 때 이종백 박사님과 엉엉 울었던 순간도 기억이 났어요.”

김태완 위원은 “보통 사람 같으면 걷기조차 어려웠을 텐데, 조구함은 정신력으로 버텨냈다”고 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조구함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것은 2013년. 조구함 측이 ‘무제한급에서 100kg급으로 체급을 낮춰야 해서 몸무게 20kg을 빼야 한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김 위원은 “당시 ‘선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는데, 조구함이 ‘가능하다’고 답할 때 눈빛이 살아있었다”고 했다.

조구함은 그때 한 달 만에 18kg을 뺐고, 그해 아시아선수권 100kg급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 뒤에도 조구함은 무릎 보강을 위해 과학원 측에 먼저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과학원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전문 장비를 동원해 조구함의 무릎 통증을 줄이고 근력을 키웠다.

◇“지금이 바로 전성기, 파리에선 금메달 따내겠다”

조구함은 “코로나 사태로 힘든 시기에 저를 영입하고 올림픽 전후로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소속팀에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KH그룹 측이 내걸었던 올림픽 포상은 금 3억, 은 2억, 동 1억원. 대회가 끝난 뒤 KH그룹은 은메달을 목에 건 조구함에게 당초 약속보다 많은 3억원을 지급했고, 동메달을 따낸 재일교포 3세 안창림(27)도 2억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KH그룹 측은 “조구함과 안창림이 메달을 따낸 과정이 금메달 못지않게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고 했다.

조구함은 “포상금과 격려금을 부모님께 많이 드려 뿌듯하다”고 했다. 학창시절 씨름을 했던 그의 아버지는 가게에 LPG를 납품하는 일을 하고, 육상 선수였던 어머니는 조경사업을 한다고 한다. 그는 “부상과 코로나로 유도 훈련을 하지 못해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무거운 것 많이 들고 험한 곳 자주 가며 일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더 힘을 냈다”고 했다.

조구함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10년 전부터 계속 ‘세상을 메쳐라’다. 2008 베이징올림픽,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을 딴 장미란에 대한 기사에서 ‘세상을 들어 올렸다’고 한 것을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스포츠만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와 힘이 담긴 문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에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치고 나니 꼭 따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어요.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지만, 전 오히려 지금이 전성기입니다. 꿈의 무대였던 도쿄올림픽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파리올림픽을 꿈꾸게 됐어요. 3년 후에는 반드시 정상에 올라 ‘세상을 메쳤다’고 소감을 밝히고 싶어요.”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