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헤치고, 175억원 사나이로
“1500만달러나 되는 보너스를 받고서 이렇게 말하는 게 말이 안 되겠지만 나는 돈을 위해 골프를 하지 않는다. 중압감 속에서도 내가 원하는 샷을 할 수 있을 때 느끼는 기쁨, 그걸 위해서 연습한다.”
패트릭 캔틀레이(29·미국)는 6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정상에 오른 뒤 담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캔틀레이에게는 얼음장처럼 냉정한 선수라는 뜻으로 ‘패티 아이스(Patty Ice)’라는 애칭이 붙었다.
캔틀레이는 지난 2주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떠올리는 경기를 했다. 우즈가 강했던 건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한 샷을 필요할 때 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스윙에 퍼팅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감각이 뛰어난 캔틀레이도 그렇게 했다. 우즈처럼 승리의 기쁨을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엷은 미소만 살짝 짓는 것이 달랐다.
지난주 플레이오프 2차전인 BMW 챔피언십에서 캔틀레이는 근육질의 ‘헐크’ 브라이슨 디섐보에게 드라이버 비거리 40야드를 뒤지면서도 6차 연장 끝에 제압했다. 디섐보가 제아무리 장타를 치고 공을 홀에 가깝게 붙여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더 먼 거리 퍼팅을 성공하며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캔틀레이는 이날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트 레이크 골프클럽(파70)에서 열린 투어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2타 앞선 선두로 출발했지만 17번 홀(파4)에서 보기를 해 2위 욘 람(스페인)에게 1타 차로 쫓겼다. 하지만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361야드 드라이브샷을 친 데 이어 홀까지 218야드 남기고 6번 아이언으로 친 공을 홀 약 3.5m 거리에 붙인 뒤 두 번의 퍼트로 버디를 잡아내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두 번째 플레이오프까지 페덱스컵 1위로 이번 대회에서 10언더파 스코어를 안고 출발한 캔틀레이는 나흘 내내 선두를 빼앗기지 않고 최종 합계 21언더파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에게 1타 뒤진 2위 람은 500만달러, 재미 교포 케빈 나(나상욱)가 3위 (16언더파)로 400만달러 보너스를 받았다. 캔틀레이는 지난해 조조 챔피언십과 올해 메모리얼 토너먼트, 그리고 플레이오프 2연승으로 시즌 4승(통산 6승)을 올렸다.
캔틀레이는 UCLA 재학 시절 55주간 아마추어 세계 1위를 지내고 2011년 아마추어 주요 타이틀을 독식하다시피 한 ‘미국 골프의 황금 세대’ 선두 주자였다. 미국 골프계는 1992년생인 캔틀레이와 1993년생 동갑인 조던 스피스, 저스틴 토머스, 브라이슨 디섐보, 잰더 쇼플리(이상 미국)를 황금 세대라 부른다. 스페인 국적인 1994년생인 람도 애리조나 주립대를 다니며 이들과 경쟁해 ‘황금 세대’의 일원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캔틀레이의 프로 생활은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다. 척추 피로골절로 신음하면서 미 PGA 투어 데뷔 첫해인 2013-2014시즌엔 5개 대회, 2014-2015시즌엔 한 대회만 출전했다. 당시 그는 “등에 칼이 꽂힌 느낌”이라고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앞으로 골프를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 말이 육체적 고통보다 더 괴로웠다”고 했다. 캔틀레이는 2016년 2월 고교 때 함께 골프를 한 절친한 친구이자 캐디를 눈앞에서 뺑소니 사고로 잃는 아픔까지 겪었다. 캔틀레이는 “골프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일곱살부터 지금까지 스윙 코치를 맡고 있는 제이미 멀리건 등 주변의 나이 든 사람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구했다. 캔틀레이는 “긴 삶의 안목으로 현재를 바라보면 고통도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조언을 따르려고 했다”며 “나에겐 ‘24/7 게임(일주일에 매일 24시간을 노력한다)’을 즐길 줄 아는 자세가 있었다”고 했다.
캔틀레이는 2017년 11월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대회에서 꿈에 그리던 첫 PGA 우승을 차지하고는 “내가 고통 없이 우승을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면서도 “우승은 단지 과정의 결과이며 다시 앞으로 우승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드는 게 중요할 뿐이다”라고 했었다. 그는 페덱스컵 우승을 차지한 뒤 “정말 대단한 우승을 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담담한 어조는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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