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여학생, 니캅 써라"..여성 탄압 '시대 역행'
[경향신문]
아프간 교육 당국 새 규정 내놔
공공장소 등 이동 자유도 박탈
폭력 진압에도 여성 시위 계속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20년 전 ‘여성인권 탄압’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일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과거 집권기(1996~2001년)에 자행했던 여성 생활 전반에 대한 강경한 제한 조치들이 다시 돌아올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속속 발표되는 여성 관련 규정을 보면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탈레반 교육 당국은 지난 4일 아프간 사립대학에 다니는 여성들은 얼굴을 제외하고 몸 전체를 가리는 검은색 긴 통옷인 아바야를 입고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니캅(사진)을 써야 한다는 교육 규정을 내놨다. 색상도 검은색으로 제한된다.
수업도 성별로 구분해서 진행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칸막이를 설치해 남녀 학생을 구분해야 한다. 여학생들은 수업 전 대기실에만 있어야 하며, 수업 후 남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교실에 머물러야 한다. 또 여학생들은 여성 교원에게서만 수업을 받도록 하고, 여성 교원 확보가 어려우면 노인 남성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여성은 가디언에 “카불에서 공부를 계속해 대학 졸업 후 소규모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몇 시간 만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동의 자유도 사라지고 있다. 탈레반은 공공장소에 출입하려는 여성들에게 남성 보호자(마흐람)의 동행을 요구한다. 군인 남편이 작전 중 숨진 한 여성은 “진료소 입구까지 데려다줄 형제도, 성인 아들도 근처에 없어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 자녀의 생계를 책임져 온 그는 일감이 끊겨 경제난에도 시달리고 있다.
상당수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안전을 이유로 강제 휴직 상태에 들어갔다. 칸다하르에서는 탈레반 조직원이 여성 은행원 일자리를 없애라며 총격을 가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여성을 겨냥한 보복 살해도 보고되고 있다. BBC는 탈레반이 고르주 주도 피로즈코에서 임신 8개월차인 여성 경찰을 가족들 앞에서 무참히 살해했다고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탈레반은 자신들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지난 4일 카불에서 여성들이 인권을 보장하라며 거리 시위에 나서자 최루탄을 쏘고 경고 사격을 하는 등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폭행을 당한 여성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의 폭력 진압에도 불구하고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여성들의 시위는 또 다른 여성들이 거리로 나서는 동기가 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아프간 여성 파티마는 “전쟁도, 갈등도 겪은 우리 여성들이 정치에서 완전히 제거돼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여성들은 다시 거리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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