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칼럼] '관제 公正'은 공정이 아니다

2021. 9. 6.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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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석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명예교수·前고용노동부 차관
정병석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명예교수·前고용노동부 차관

청년들은 갈수록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심각하게 지적한다. 이들이 공정의 이슈로 가장 강조하는 관점은 공정한 기회와 공정한 보상에 관한 것이다. 기회와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문제는 많이 강조되어 왔고 그간 줄곧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다. 그런데 능력과 기여에 따른 공정한 보상 문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크게 이슈화되지도 못하고 있다. 그것은 공정한 보상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사회의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가장 많은 보상을 받고 있는데 신규 참여하는 청년들에게 공정한 보상을 하자고 하면 바로 자신들의 몫을 줄이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받아들인다.내 능력과 일한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나보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과가 떨어지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은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사회구조는 불공정하게 느끼고 불만이 축적될 수밖에 없다.

1970년대와 8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공정한 보상, 공정한 배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보상체계가 공정했다기 보다는 개발 과정에서 다같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저임금 하위 계층을 배려하자는 사회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위 계층은 급속히 성장하는 경제에서 조직 내부의 보상을 더 많이 차지하려 애쓰는 것보다 다른 방식으로 더 큰 보상을 받을 기회가 많았다. 고도 성장으로 조직의 신설과 확대가 급속히 진행되며 상급자들은 빠른 승진을 통해 보수 인상보다 더 큰 혜택을 누릴 기회가 많았다.

1980년대까지 산업 사회에서는 임금조정에 있어 '하후상박 원칙'이 일반적이었다. 기업내에서 임금인상 재원을 확보하면 먼저 저임금 해소 등 저임금 하위 계층에 더 많이 배분하고 고임금 상위 계층에 더 적게 배분했다. 이러한 원칙에 불만이 없었고 사회의 당연한 원칙같이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문화에서 대기업은 임금인상률을 낮게 하고 저임금 중소기업은 높은 인상률을 시행하는 관행이 형성되었다. 사회에서 가장 혜택을 적게 받은 계층에 더 많이 배분하자는 존 롤즈의 정의의 원칙이 저절로 실현됐다.

상급자들은 매년 호봉 승급을 통해 임금이 상향되고 직급도 승진하며 기본 베이스엎에 추가하여 2중 3중의 인상효과를 누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무관리직과 생산직 간의 임금격차도 크지 않았다. 정부에서 하후상박 원칙과 임금격차 완화를 적극 권고하였지만 그보다는 이러한 원칙을 지지하는 사회문화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조직의 확대나 빠른 승진 기회가 적어지니 연례적인 임금인상에 집중하며 이제는 제몫을 챙기기에 급급하면서 하후상박 원칙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후상박이란 용어도 이제는 쓰지 않는다. 잘나가는 대기업의 신입사원 연봉 초임이 5000만원을 넘는가하면 2000만원에도 미달하고 비정규직 신분에 최저임금을 받는 대졸자도 허다하다. 성과에 따라 상여금이 달라지는 제도가 일부 도입되었지만 아직도 근속기간에 따라 호봉이 증가하는 연공급 보수체계가 정부, 공기업, 대기업 등에서 근간을 이룬다.

성장 정체기에 들어섰는데도 고도 성장기에 만들어진 연공급 보수체계가 유지되는 것에 대해서 신규 참여하는 청년들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직무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직무급, 맡은 일에서 기대되는 역할의 크기나 중요도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 역할급 등에 대해 많은 논의만 있었지 실제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임금격차와 소득 분배의 불공정 문제를 당사자들의 참여없이 정부가 나서서 최저임금의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재정지원 등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의 문제인식과 이에 기반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 한다. 스웨덴식의 연대임금 전략도 자주 논의되지만 결국 기득권층의 양보와 이를 설득해 내는 노사 지도층의 리더십에 달려있다. 여기에서 필요한 타협과 양보는 이미 가진 것을 내놓는 양보가 아니라 앞으로 받게 될 임금에서 청년세대, 곧 우리의 자식, 후배를 위해 조금 양보하라는 것이다. 청년 세대의 문제는 노사, 사회 지도층 누구에게나 해당되는데 대화와 양보, 타협, 이를 추동해내는 리더십은 누가 주도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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