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김완수 KB스타즈 신임 감독,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

김영훈 2021. 9. 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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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선수부터 시작해 프런트 중학교, 고등학교 코치, 프로팀 코치, 그리고 마침내 프로 구단 감독까지. 한 단계를 거쳐서 한 팀의 사령탑에 앉는 데까지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른다. 돌아온 만큼 느끼는 것도 많을 것이며, 다부진 각오도 있을 것이다. 새 시즌 청주 KB스타즈를 지휘하는 김완수 감독에 대해 알아봤다.

농구의 시작
김완수 감독과 농구의 연이 시작된 것은 지금부터 30여년 전. 육상을 하던 한 소년은 코치에게 뜬금없이 농구를 추천받았다. 갑작스러운 추천에도, 그저 운동이라면 좋아했던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은 그 길로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
산곡북초에서 농구를 접한 김완수는 송도중으로 진학했다. 여기서 만난 은사가 그 유명한 전규삼 선생. 시대를 앞서간 지도자라고 불리던 전규삼 선생은 당시에도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한 손을 묶기도 했고, 눈을 가리고 드리블도 쳤어요. 포지션 상관없이 가르치셔서 가드인데도 훅슛을 배우기도 했죠. 정말 시대를 앞서간 지도자였어요. 덕분에 창의적인 플레이도 많이 배웠고, 재밌게 운동했어요. 농구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였죠.”
송도고를 졸업한 김완수는 건국대로 진학했다. 저학년 때부터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송도고가 조금 유연한 분위기였다면, 건국대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그게 이상한 건 아니었어요. 그 때는 다른 학교들도 비슷했거든요. 기억나는 건 살면서 빨래를 가장 많이 했던 것 정도(웃음). 세탁기도 없어서 매일 손빨래만 했죠. 농구에서는 사실 기회를 잡았는데, 제가 못한 것도 있어요. 그래서 농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죠.”
하지만 오래도록 삶의 전부였던 농구공을 놓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건국대에서의 시간도 지나갔고, 4학년이 된 그에게 드래프트 시기가 다가왔다. 당시 건국대를 맡고 있던 김승환(현 가스공사 코치) 감독의 지시로 신청서를 쓰기는 했지만, 대학 시절 보여준 게 많지 않았기에 기대도 크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었다. 드래프트장에서 김완수, 이름 석자가 불렸다. 2군 드래프트도 아닌 1군 드래프트에서 말이다. 신세기 빅스의 유재학 감독은 트라이아웃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보여준 김완수를 지명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김완수는 프로 선수 타이틀을 얻게 됐다. 당시 신세기에는 주전 가드가 없어 혹시 모를 기대감도 가졌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최명도와 홍사붕, 강기중 등 가드들이 줄줄이 팀에 들어왔다. 게다가 외국 선수도 켄드릭 브룩스라는 가드 외인이 합류했다.
당연히 신인 김완수에게 자리는 없었다.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고, 곧바로 그는 군대에 입대했다. 이게 김완수의 선수 인생 마지막 이야기였다.

선수 은퇴와 코치 데뷔
선수를 정리하고 프런트 생활을 하던 김완수. 1년 동안 엑셀도 배우며 일에 적응하던 그에게 갑작스레 지도자 제안이 들어왔다. 충청남도에 위치한 온양여중이었다.
“솔직히 군대에서 제대할 때 선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2년 동안 열심히 몸도 만들었죠. 그런데 팀에서 물어보더라고요. 사무국과 선수 중에 고르라고요. 어차피 나중에는 사회 생활을 해야 하잖아요. 선수 생활을 몇 년 더 하는 것보다 프런트를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선택했죠. 결과적으로 잘한 결정이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지도자 제의가 들어왔어요. 솔직히 지도자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 잘 배운 것들을 전해주고 싶었거든요. 솔직히 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고, 처음 가는 지역으로 가야했지만, 그래도 지도자 꿈 하나만 바라보고 갔죠.”
2006년. 그가 온양여중을 처음 맡은 시기였다. 온양여중은 선수 수급 여건이 좋은 팀도 아니었다. 당연히 성적도 좋지 못했다. 하지만 김완수 감독의 지도로 팀이 점점 달라졌다. 그는 온양여중과 온양여고를 차례로 바꿔놨다. 매년 꾸준히 4강에도 들었고, 준우승 2번도 기록했다.
하지만 이때를 돌아본 김완수 감독의 기억은 달랐다. “솔직히 무모했어요. 훈련 강도도 높았고, 무섭게 하기도 했고요. 요새 그때 선수들을 만나면 미안하다고만 해요. 그때는 선수들을 끌고가기만 하는 지도자였죠.”
자신은 부족했다고 말했지만, 주위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하나은행의 박종천 감독은 아마추어에 능통한 지도자를 원했고, 한 학교에 오래 있었던 김완수 코치를 하나은행 코치로 불렀다. 10년 넘게 아마추어에서 고생했던 김완수 코치의 노력도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왜 KB의 선택은 김완수일까?
청주 KB스타즈의 또다른 별명은 ‘여자농구특별시’이다. WKBL 6개 구단 중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할 뿐아니라 전력도 최강이다. 국내 최고 선수인 박지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비시즌을 통해 ‘국대 슈터’ 강이슬도 영입했다. 이밖에 염윤아, 심성영, 김민정, 최희진 등등. 당연히 우승후보 0순위 팀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KB스타즈는 우승이 아니면 안 되는 팀. 그런 팀을 맡게 된 감독은 당연히 막중한 부담감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솔직히 부담되죠. 부담이 안 되면 이상한 거죠. 그런데 누군가는 맡아야 하잖아요. 그리고 KB스타즈 감독 자리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오히려 저한테 이런 제안을 해준 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렇다면 KB스타즈는 왜 프로 감독 경험이 없는 김완수를 택했을까? KB스타즈는 여자농구에 정통한 사람을 원했다. 그러면서 현역 지도자이길 원했다. 비록 프로 감독 경험은 없더라도 현역 지도자이며, 여자농구에서 중, 고, 프로 코치까지 맡아본 김완수 감독은 그 기준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지도자 김완수를 미리 알아볼 기회도 있었다. 매년 여름 WKBL이 주최하는 박신자컵 서머리그. 코치가 지휘봉을 잡는 박신자컵은 김완수 감독의 지도 경력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박신자컵에 참가하는 하나원큐의 전력은 매년 상대보다 월등히 강했다. 자연스레 주위에서는 하나원큐의 박신자컵 우승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대신 KB스타즈 프런트는 접근 방식을 달리 했다. 박신자컵 영상을 돌려보며 상황 판단에 능한지 살펴봤다. 3년 내내 박신자컵 영상을 모두 찾아보며 위기 상황, 작전타임 이후 공격의 성공 여부 등을 살펴봤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김완수 감독을 선정했고, 몇 차례 면접을 거쳐 새 사령탑으로 선정했다.
“지도자에게 지도력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 중요해요. 서로에게 신뢰를 주면서 팀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거죠. 박신자컵에 나가면서도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한 팀으로 만들어서 나가쬬. 팀 분위기도 좋았던 덕분에 3년 내내 결과가 잘 나왔죠.” 

 

초보 사령탑 김완수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
김완수 감독은 KB스타즈에 부임하며 육성을 강조했다. KB스타즈는 그동안 육성과 거리가 멀었다. 김민정과 심성영이 주축으로 올라선 이후로 KB스타즈에서 성장한 유망주를 찾기 힘들었다. 당연히 팀은 우승을 원했기에 유망주를 키우기 쉽지 않은 여건이었다.
물론, 유망주가 없지는 않았다. 2020년 2월 전체 1순위로 선발한 허예은이 있었다. 하지만 이밖에 이윤미, 선가희 등 여러 선수들은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다. 때문에 KB스타즈는 강한 주전 만큼 벤치 전력이 강하지 않은 팀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김완수 감독은 자신 있게 육성을 외쳤다. 그리고 부임 초반부터 이를 위해 공을 들였다. 박지수와 강이슬은 WNBA와 국가대표 차출로 자리를 비웠고, 염윤아와 심성영, 김민정 등은 몸을 만들고 있던 5월. 김완수 감독은 나머지 선수들을 위한 시간으로 할애했다.
직접 오전 훈련부터 야간 훈련까지 나서서 선수들을 세세하게 지도했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전보다 강해진 운동 강도에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김완수 감독은 조금씩 운동 강도를 조절하며 선수들에게 맞춰갔다.
“제가 이 팀에 오기 전까지 생각했던 훈련량과 부임 초반 가져갔던 훈련량은 분명 차이가 있어요. 60% 정도? 그런데 제가 원하는 이상만 바라보고 끌고가면 안 되잖아요. 선수들과 같이 나가야죠.”
그 결실을 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 7월 초 경상남도 통영에서 열린 2021 박신자컵. 누구도 우승팀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던 KB스타즈는 연일 이변을 작성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소극적이라고 지적받던 허예은이 팀을 이끌었고, 성장세가 뚜렷하지 않았던 이윤미와 선가희는 날아다녔다. 2년 동안 부상으로 고생했던 엄서이는 유망주 시절의 위력을 보여줬다. 김소담도 고참답게 중심을 잡았고, 조수민, 박은하 등도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KB스타즈의 활약에 지켜보는 팬들과 KB스타즈 구단도 놀랐다. 그만큼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김완수 감독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박신자컵의 상승세를 시즌까지 이어가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계속해서 기회를 주고 신경도 쓰면서 선수들을 키워야죠. 당장 박신자컵에 잘했던 선수들을 시즌에 기용한다고 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팀도 선수도 어려움을 겪겠죠. 조금씩 조금씩 적응을 시켜야죠. 이제는 그걸 해나가는 단계입니다.”
육성은 어느 정도 방법을 잡았다. 이제 남은 한 마리 토끼는 우승이다. KB스타즈는 8월까지 주전들이 모여서 훈련을 진행하지 못했다. 시간은 많지 않은 상황. 대신 어느 정도 청사진은 그려놨다.
“빠른 농구를 하고 싶어요. 예전부터 제가 추구했던 색깔이기도 하고요. 센터가 있다고 빠른 농구가 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확실한 리바운더가 있으면 빠른 농구가 더 쉬울 수 있죠. KB스타즈에 스피드라는 색깔을 입히고 싶어요. 남은 시간 동안 제가 구현해야죠.
지수를 위한 준비도 하고 있어요. 제가 상대 팀일 때 KB를 공략하기 위한 준비들을 했잖아요. 이제는 반대로 그걸 해결하는 숙제를 안게 된 거죠.”
목표는 우승이다. 앞서 말했듯 KB스타즈는 우승아니면 안 되는 팀이다. 제아무리 초짜 감독인 김완수 감독이어도 이 기준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지난 시즌 상대의 세리머니를 눈앞에서 바라봐야 했던 KB스타즈. 2022년 봄에는 화려하게 왕위에 오를 수 있을까. 키는 새 사령탑인 김완수 감독이 쥐고 있다.

사진 제공 = 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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