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가치 추구 시대, 금융의 역할

한겨레 2021. 9. 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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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과 금융기본권

[왜냐면] 김준일ㅣ목원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기업경영에서 친환경, 사회책임, 지배구조 개선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에스지(ESG)경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비단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기후환경위기의 심각성을, 그리고 사회적 운명공동체로서의 우리 삶을 재인식시킨다.

이른바 엠제트(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서 이러한 가치의 추구를 힙하게 여긴다. 이 세대는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적 가치 추구를 기업의 제일 중요한 사명이라 믿거나, 상품이나 서비스 선택 때 이에스지 가치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이에스지 가치 추구가 기업의 장기적 성과에 긍정적이라고 줄곧 주장하며 이에스지 성과가 좋지 않은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앞다투어 생산, 패키징, 유통, 자금조달 등에 이러한 요소를 반영하고 사회적 공헌 활동뿐만 아니라 새롭게 이에스지위원회를 구성하여 노동, 인권, 지역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공적연금기구도 유사한 목소리를 낸다. 국민연금공단은 2022년 말까지 책임투자 원칙을 적용하는 자산군의 비중을 국민연금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국민연금 운용자산은 2024년에는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다.

이렇게 이에스지 가치를 중시하는 배경에는 기업의 이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두는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이 기후환경위기, 불평등, 양극화 등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는 현실이 있다. 이에 따라 근로자, 소비자, 협력회사,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고르게 추구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주장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위기가 전환의 시대를 열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전환이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영역은 금융시스템일 것이다. 기후변화를 멈추고 사회의 불평등을 더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곳에 돈을 몰아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금융시스템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고 규율하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실 21세기 들어 금융시스템은 생산적 자원에 자금을 공급하기보다는 자산가치의 거품과 투기적 행태를 초래하여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는 심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스티글리츠 교수 등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실시한 양적완화 정책이 부의 불평등만을 초래하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도 금융의 이익은 소득이 높고 자산이 많으며 신용등급이 높은 계층에 집중되어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그리고 이 자산 불평등은 다시 많은 금융이용 기회와 좋은 조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맞서기 위한 세계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존재한다. 금융부문에서는 취약계층의 금융접근성을 확대하는 포용금융이나,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환경산업에 사회적으로 유한한 금융자원을 투입하려는 그린 양적완화, 전략적 양적완화 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기본대출제도 등 국민 모두에게 경제적 기본권으로서 금융기본권을 보장하여 금융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최근의 시도는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금융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금융을 적절하게 접근·이용·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불평등을 완화하고 이에스지 가치 추구에 있어서 금융의 역할을 환기한다. 최소한 금융기본권 논의는 불평등 완화를 위한 사회변화를 촉발할 수단으로서 또 출발점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현실적인 제도 설계야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장원리를 내세우며 말도 안 되는 소리 취급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금융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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