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 증거일까, 욕심의 찌꺼기일까"..'집'에 대한 욕망 비춘 연극 '집집 : 하우스 소나타'

선명수 기자 2021. 9. 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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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2일 서울 대학로에서 막을 올린 연극 <집집 : 하우스 소나타>는 더 이상 주거의 공간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집을 둘러싼 다층적인 욕망과 불안을 조명한다. ⓒ김솔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사람이 거주하는 건축물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집이 갖는 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듯하다. 집은 생존을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고, 동시에 끊임없는 욕망과 성취, 박탈감의 대상이다. 지난 2일 막을 올린 <집집 : 하우스 소나타>는 더 이상 주거의 공간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집을 둘러싼 다층적 욕망과 불안을 조명한 연극이다.

서울의 옛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가 내려다보이는 한 임대아파트. 연극의 무대는 지어진 지 20년쯤 지난 이 아파트의 603호다. 10평도 채 되지 않는 비좁고 낡은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내 집’이자 편법을 써서라도 입주하고자 하는 절실한 생존의 장소다.

연극은 이 아파트를 배경으로 약 2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두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2002년의 60대 여성 박정금. 난지도에 무허가 집을 짓고 살던 그는 교회 집사 성현숙의 도움으로 새로 건설된 임대아파트에 입성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에게 이 아파트는 기적과 같은 공간이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빌딩 청소 일을 하며 열심히 살지만, 일을 할수록 불안도 깊어진다. 소득 기준 때문에 수급 자격을 박탈당하고 아파트에서도 쫓겨날 수 있을 거란 공포 때문이다.

그리고 18년의 세월이 흐른 2020년, 603호의 새 주인이 이삿짐을 푼다. 갓 혼인신고를 마친 30대 여성 연미진이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던 연미진은 신혼집 구하기란 가혹한 현실을 마주한 뒤, 결국 친구의 ‘빽’을 쓰는 불법을 택한다. 그렇게 입주한 곳이 박정금이 살던 임대아파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불안하긴 그도 마찬가지다. 집은 너무 낡았고, 이웃들은 대놓고 미진의 입주 자격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낡은 싱크대를 리폼하는 과정에서 연미진은 박정금의 흔적을 발견한다. 검정 비닐봉지와 손수건으로 둘둘 싸여 싱크대 걸레받이 안쪽에 단단히 붙여진, 구권 돈뭉치다.

연극은 268만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이 돈다발을 매개로 두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보인다. 최근 산업재해 문제를 다룬 연극 <괴물 B>를 선보인 극작가 한현주는 이번 신작에서 현 시기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라 할 수 있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과 좌절에 주목했다. 지난 5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한현주 작가는 “허허벌판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난지도와 석유비축기지가 다른 공간으로 변모하는 등 도시가 확장하는 과정 속에서 집에 대한 우리의 욕망도 함께 자라났다고 생각한다”며 “집에 대한 욕망이나 불안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고, 이런 도시의 변화 속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한 작가는 이번 작품을 쓰면서 7년 전 신혼집을 구하면서 느낀 불안과 좌절의 감정을 떠올렸다고 한다. 극중 임대아파트의 삶과 풍경은 현장 리서치를 통해 쓰고 또 보완했다. 연극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명의 인물을 통해 도시의 변화상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처럼 겹겹이 쌓여가는 집에 대한 욕망을 그려보인다. 한 작가는 “다른 시기와 상황을 살아가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욕망의 거울이 되는 모습을 그리려 했다”며 “끝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키우기에, 집에 대한 욕망은 상대적이기도 하지만 저마다의 환경에선 동시에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연극 <집집 : 하우스 소나타>는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 603호를 배경으로 2002년(왼쪽)과 2020년, 약 20여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두 인물의 집에 대한 욕망과 불안을 그려보인다. ⓒ김솔


연극 속 두 인물은 자신의 삶을 위해 윤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때로는 ‘불법’이라 규정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박정금은 산재로 허리를 다친 후 두문불출하던 아들이 처음으로 집 밖에 나가 장애등급을 신청하자,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잘했다”는 말부터 꺼낸다. 아들의 부양 능력이 상실돼 수급 자격이 유지되면, 아들과 이 집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죽은 뒤에도 아들이 이 집을 승계받아 살기를 바란다. 불법 입주를 택한 연미진은 꿈속에서 “신선함 1도 없이 너무 뻔한 태몽”임을 알면서도 복숭아를 베어 먹고 눈물을 흘릴 만큼 그가 처한 현실은 팍팍하다.

두 사람은 싱크대 밑에 숨겨놓은 돈뭉치를 보며 이렇게 묻는다. “이건 열심히 산 흔적일까, 아니면 욕심의 흔적일까.” “그건 열심히 산 증거일까. 아니면 욕심의 찌꺼기일까.” 그 말은 타인의 탐욕을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갈망하는, 어쩌면 연극 속 인물들과 닮아 있을 우리 자신에게 연극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집에 대한 욕망뿐만 아니라 주거의 불안과 모순을 함께 짚은 이 연극은 극단 해인의 이양구가 연출했다. 박명신·이윤화·이나리·최요한·이선주·조형래·최설화·이은정·문희정·정혜지·호종민·우범진 등 12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공연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17일까지.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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