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R&D 규모는 글로벌 선두권, 질적 성과는 '거북이'.."중국이 한국 추월도"

고광본 선임기자 2021. 9. 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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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R&D 경쟁력 강화 방안은
정부 연구개발 30조, 전체 R&D 100조 시대에도
120개 분야에서 중국과의 격차 줄거나 밀리기도
히든챔피언 세계 1%미만..산학연정 플랫폼 필요
기업이 국가R&D에 참여하고 부처 융합연구해야
고광본 선임기자
[서울경제]

정부가 내년에 대학, 정부 출연 연구 기관, 기업에 지원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27조 4,000억 원)보다 8.8% 늘어난 29조 8,000억 원으로 정하고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 R&D 예산이 5년 만에 10조 3,000억 원이나 증가하는 것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R&D 투자, 기업까지 포함한 국가 전체 R&D 투자(100조원 이상)에서 각각 세계 1위, 2위이다.

하지만 R&D 투자 규모에 비해 실질적 성과는 크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120개 중점 과학기술 중 대부분의 주력 산업에서 2018년을 기점으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게 줄어들거나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 글로벌 10대 경제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 점유율 3위 내 경쟁력을 갖춘 히든 챔피언 기업이 전 세계 기업 중 1%에 이르지 못한다. 그렇다면 산업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한 R&D 경쟁력 강화 방안은 무엇일까.

미국(100)과 비교한 한국과 중국의 기술수준과 기술격차 비교. 2018년과 2020년 한국과 중국의 기술수준이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업 R&D 질적 고도화 안돼···중국에 기술 역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2014년 1년 4개월 앞섰으나 2018년 동일 수준이 될 정도로 추격당했다. 2020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가운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핀테크 등 신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추월이 두드러졌다. 정부가 내년에 중소기업 전용 R&D에 2조 5,300억 원을 배정하면서 2017년에 비해 2배 이상 늘리고 한국판 뉴딜과 신산업, 소재·부품·장비 산업 등 10대 중점 분야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으나 중국·독일·일본 등 경쟁국은 우리보다 더 뛰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의 R&D 과제 생태계에서 ‘선도(퍼스트 무버) 연구’가 부족하고 ‘남 따라하기’ 연구가 많아 성공률은 98%가량이나 되지만 임팩트가 부족하다. 과학기술 혁신과 디지털 전환을 연구하는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R&D 투자 확대를 통해 일본과의 소재·부품·장비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산업 등 국가 경쟁력 상승으로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지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기업 연구소 4만2,000개 넘지만···무늬만 연구소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기업 부설 연구소는 2004년 1만 개, 2018년 4만 개를 넘고 올 7월 말 4만 4,254개에 달한다. 기업의 R&D 투자는 1990년 2조 3,745억 원에서 2019년 71조 5,067억 원으로 30배 늘었다. 기업 연구 인력도 1990년 3만 8,000명에서 올해 37만 5,000명(박사는 7% 미만)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삼성·현대차·LG 등 5대 그룹의 R&D 투자 비중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편중돼 있다. 그럼에도 유럽연합(EU)의 ‘세계 2,500대 R&D 투자 기업’ 자료를 보면 2019년 세계 2,500대 기업 중 우리나라는 59개사로 전년보다 11개나 감소했다. 중견 기업도 현상 유지형 R&D에 머무르며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2.03%)이 독일의 히든 챔피언(6%)의 3분의 1 수준이다. 2017년 세계 히든 챔피언(2,734개) 중 한국은 23개로 1%도 안 된다. 최근 5년 새 7,000개 가까이 늘어난 기업 연구소 중 3인 이하가 70% 가까이 되고 10인 이상은 1% 남짓에 그친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이공계 석·박사급 연구원을 기업과 공공 연구소에 배치해 군대를 대체하는 전문연구요원제도를 인재 해외 유출 방지와 기업과 국방·공공 R&D 활성화의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세계 R&D 투자 10대 기업

부처 간 R&D 융합 연구 부족···기업기술혁신특별법도 검토해야

국가 R&D 시스템에서 부처별로 각자 R&D 사업을 기획해 융합 연구가 부족하고 쪼개기 사업이 난립해 파급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과학기술 정책 분석·평가를 하는 윤지웅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장기 전략 관점에서 범정부적으로 융합 연구를 통해 R&D 스케일업 투자를 늘리고 사업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R&D 공제 규모가 2015년보다 약 20% 감소했는데 R&D 조세 지원 체계의 정비도 필요하다. AI 컴퓨터 비전 기업인 라온피플의 이석중 대표는 “호주처럼 R&D 활동 판단은 과학기술 부처가 맡고 비용 신고 적정성 심사는 세무 당국이 담당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기업 연구원의 직무 발명 보상금에 대한 혜택을 과감히 늘려 연구 의욕을 북돋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이 R&D 과제 성공 시 내야 하는 기술료(연구 성과로 인한 매출의 5~20%)가 경영 불확실성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기술·산업 간 융복합이 날로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범부처 차원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부처 간 업무 충돌을 조율하기 위해 이른바 ‘기업기술혁신특별법’을 제정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규제를 다루기 위한 옴부즈만을 스웨덴처럼 국회에 두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가별 연구역량 비교

산학 연정 R&D 혁신 플랫폼 구축···국가 R&D에 기업 요청 담아야

정부가 급속히 R&D 지원 예산을 늘렸지만 대학과 출연연의 기술이전율은 23.1%에 그치며 미국(26.4%), EU(33.5%)에 비해 뒤처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산학 협력 경쟁력(2017~2019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스위스(1위), 미국(2위), 영국(6위), 독일(7위)보다 한참 뒤처진 27위이다. 익명을 원한 한 기업 연구원은 “기업이 확보한 기술을 정부가 뒤늦게 R&D에 나서는 불합리한 상황도 있다”고 전했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7~8년 전부터 ‘장롱특허’가 나오지 않도록 문제의식을 갖고 출연연에서 특허 심사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들은 대학이나 출연연에서 ‘특허(논문 포함)를 위한 특허’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정부가 나서 산학연 연구 데이터를 통합한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구축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1 대 1 매칭하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며 “범정부적으로 도전적 신산업 투자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경우 2017년 생명공학을 시작으로 AI, 자동차, 해상 풍력 등 업종별 대표 회사들과 함께 R&D 투자를 논의한다. 일본은 ‘문샷(Moonshot)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와 산학연이 투자 분야와 단계별 목표 등을 정한다.

세계적 화두인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서도 시멘트·철강·반도체·화학 산업 등 탄소 저감 기술 개발을 위해 산학연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국가 R&D 계획 수립과 기획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을 늘리고 NST와 출연연 이사회에 기업인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며 “기업도 대학과의 R&D 협력 과제를 통해 개발한 기술에 대해 공동소유 형식을 취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독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산학연의 공조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관점에서 본 국가 R&D 혁신 솔루션

·산학연정 오픈 플랫폼 구축, 1대 1 맞춤형 서비스

·부처 융합연구 활성화 ···산학연 중대형 과제 확대

·영국·일본처럼 기업이 국가 R&D 기획·투자 참여

·R&D 조세지원 현실화·기업기술혁신특별법 수립

·기술혁신장수기업 지정···혁신인재 컨트롤타워 구축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이 최근 CJ바이오파운드리를 방문해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합성생물학 핵심기술 지원 의지를 밝히고 있다.

‘히든 챔피언’ 양성···기술 혁신 장수기업 지정해야

독일·일본 등은 소재 등 핵심 분야에서 장수 기업이 많다. 한국과 일본의 소재 전쟁을 보더라도 일본의 경우 포토레지스트에서 신에쓰화공, 불화수소에서 모리타화공,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서 스미토모화학처럼 100년이 넘는 곳이 많다. 우리는 기업 연구소 중 10년 이상은 1만 개(24%), 20년 이상 연구소는 2,000여 개(5%), 30년 이상 연구소는 390여 개(0.9%)에 그친다. 따라서 중소·중견 기업 중 국가적으로 필요한 분야에서 R&D 투자를 늘리는 기업을 ‘기술 혁신 장수 기업’으로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윤지웅 경희대 교수는 “중견 기업 중에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기업 매각에 관심이 큰 기업인이 많다”며 “R&D 투자를 많이 하는 곳에 상속세율을 낮추거나 환급해줘 히든 챔피언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에서 ‘인재혁신 컨트롤타워’ 세워야

기업에서는 반도체·AI·소프트웨어 등 핵심 인력이 부족한데도 정부의 R&D 인력 양성 업무는 10개가량 부처로 흩어져 있다. 국가 R&D 투자 로드맵과 연계해 산업·과학 인력 확보를 총괄하는 인재혁신본부, 나아가 저출산에 따른 이민 문제까지 다루는 인재 혁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사혁신처가 주로 공공 분야 인사만 다뤄왔는데 이를 확대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R&D 인력 확보를 위해 ‘인재청(Office for Talent)’을 만들고 영국 혁신기구(UKRI)를 운영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미국 국가경쟁력위원회와 유사한 범기업 혁신 싱크탱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미국·중국·싱가포르 등 해외에서는 고급 인재 양성과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면서 범국가적인 고급 인재 육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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