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명이 사는 그 도시는 어떤 색깔인가요?

장재진 2021. 9. 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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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대체로 순대를 소금에 찍어 먹는다.

하지만 쌈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천만 개의 도시'는 서울 사람들의 '물처럼 흐르는' 일상에 주목했다.

몇 백년쯤 지나 미래의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를 '스티브 잡스'의 시대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세상은 그런 한두 명의 위인만이 아니라 '그냥 자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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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연극 '천만 개의 도시' 1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연극 '천만 개의 도시'에서 배우들이 건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서울 곳곳에서 펼쳐지는 평범한 일상풍경들이 극에서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서울시극단 제공

이곳에서는 대체로 순대를 소금에 찍어 먹는다. 하지만 쌈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이들이 모이고 모여 도시의 색깔이 된다. 각양각색의 군상이 조각보처럼 얽혀 있는 서울의 풍경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시극단이 1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연극 '천만 개의 도시'에서다.

제목처럼 한때 인구 1,000만 명을 자랑했던 메가시티와 그 시민들이 극의 주인공이다. '천만 개의 도시'는 서울 사람들의 '물처럼 흐르는' 일상에 주목했다. 몇 백년쯤 지나 미래의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를 '스티브 잡스'의 시대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세상은 그런 한두 명의 위인만이 아니라 '그냥 자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천만 개의 도시'에서 배우들이 등산객을 연기하고 있다. 특징적인 플롯 없이 일상적인 대사로 극은 흘러간다. 서울시극단 제공

무대는 서울의 축소판이다. 광장부터 옥상 테라스, 코인 노래방, 지하철 플랫폼, 입시학원, 천변 산책로, 마로니에 공원, 택시까지… 서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47개 공간이 등장한다. 부부와 친구, 직장동료, 외국인, 장애인에 더해 반려동물까지 등장하는 역할만 100개에 달한다. 서울의 다양성을 최대한 응축하기 위한 기획 의도다.

극은 '쇼트폼(Short Form)' 콘텐츠들이 옴니버스 방식으로 이어져 있는 구조다. 개별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사소해서 처음에는 당혹스러울 정도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털어놓는 딸, 택시 안에서 옥신각신하며 말다툼하는 부부, 헬스장에서 개인지도(PT)를 받을 것인지 고민하는 남성 등 특별할 게 없는 사람들의 평범한 대사가 전부다. 뚜렷한 서사와 개성 있는 캐릭터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지루할 수 있다. 대단한 문학적 상징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여도 좋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지만 "한 세계를 온전히 보여주는 방법은 그 세계의 순간을 사소한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다 보여주는 것"(전성현 작가)이라는 극작 의도에 충실한 작품이다.

이 독특한 공연의 의미는 서울을 논할 때 "분명히 존재하지만 빠져 있는 시선"(박해성 연출)을 관찰한다는 데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뿐만 아니라, 서울살이가 길어져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돼버린 타지 사람들에게 내가 몸을 부대끼며 사는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서울 입성을 꿈꾸는 누군가에게는 2시간 30분 분량의 예고편이 될지 모른다.

'천만 개의 도시'는 '배리어 프리' 공연이다. 극에 장애인 배우가 등장할 뿐만 아니라, 모든 대사가 자막으로 제공된다. 서울시극단 제공

장애인의 공연 관람 접근성을 높인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극으로도 완성도가 높다. 연습 과정에서부터 장애인 배우가 참여하는 등 현실성을 높였다. 공연 일부 회차에는 수어 통역과 음성 해설이 제공된다. 모든 대사가 자막으로 나오는데, 무대 세트 위에서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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