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의 못다한 이야기 "도쿄올림픽, 한일전이 가장 짜릿했죠"
"중국 리그 이후 미국·이탈리아 진출 고민"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2020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배구 여제' 김연경(33·중국 상하이)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연경은 모든 것을 쏟아부은 국가대표에 미련을 두는 대신 스파이크 끈을 다시 조여 맸다.
그는 "남은 선수 생활 동안,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목표"라고 다짐했다.
그는 "'김연경이 아직도 잘하는구나!', '나이가 많이 들어도 잘하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몸 관리 잘하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김연경이 6일 오후 취재진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국가대표 은퇴와 관련한 소회와 향후 계획을 진솔하게 밝혔다.
김연경은 8월 12일 오한남 대한민국배구협회장을 만나 국가대표 은퇴 의사를 밝혔다. 협회는 김연경의 의사를 존중해 은퇴를 받아들였다.
김연경은 17년간 태극마크와 함께 울고 웃었다.
주니어 시절이던 2004년 아시아청소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이듬해 국제배구연맹(FIVB) 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성인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이후 올해 도쿄올림픽까지 세 번의 올림픽, 네 번의 아시안게임, 세 번의 세계선수권대회를 비롯해 수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해 우리나라 여자배구의 중흥을 이끌었다.
김연경이 없었다면 2012 런던 대회 이래 여자 배구의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과 2012 런던·2020 도쿄 등 두 번의 4강 신화도 없었다.
'17년 국가대표' 은퇴 "지금도 믿기지 않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김연경이 마지막으로 뛴 경기는 8월 8일 세르비아와의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이다.
한국은 세르비아에 0-3으로 패했다. 대표팀의 주장인 김연경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숨기지는 못했다.
선수들이 모두 떠난 뒤 김연경이 텅 빈 코트를 응시하는 장면이 포착돼 화제가 됐다.
김연경은 "도쿄올림픽을 하면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매 경기 했다"며 "끝났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하면서 코트를 바라봤다"고 돌아봤다.
그는 "사실 국가대표 은퇴 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할지 고민이 컸다"며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가 끝나고 은퇴하면 어떨지 개인적으로 조금씩 생각하고 있었다. 부상도 조금씩 생겼고, 배구 시즌이 겨울과 봄에 하고 대표팀 시즌이 여름에서 가을까지 진행되는데, 1년 내내 톱니바퀴처럼 돌고 있다는 생각, 버겁다는 생각이 들면서 은퇴 시기를 올림픽 이후로 잡았다"고 소개했다.
김연경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내년 아시안게임을 함께 못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하다"며 "하지만 내 나이가 마냥 어린 것은 아니라서 은퇴 시점을 그렇게 정했다"고 덧붙였다.
가장 짜릿했던 올림픽 순간은 조별리그 한일전 역전승
김연경은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의 4강 신화를 이끌며 큰 사랑을 받았다.
김연경의 '조금만 더', '해보자! 후회 없이'라는 간절한 외침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많은 드라마를 만들어낸 김연경은 도쿄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기로 조별리그 한일전을 꼽았다.
한국은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의 경기에서 최종 5세트 12-14에서 역전승을 거뒀다.
그는 "어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누가 계산을 하고 가셨더라. 가는 곳마다 팬들이 고생하셨다고 말씀하신다"며 "팬들에게 너무 감사함을 느끼고 한국에 와서 지내다 보니 실감을 많이 한다. '올림픽이 참 큰 대회구나'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짜릿한 것은 한일전이었다. 특히 12-14에서 역전승으로 마지막 세트를 마무리했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그때가 제일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김연경은 화제가 됐던 '해보자! 후회 없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한다. 이번 올림픽은 5년 만이라 더욱 중요했다"며 "끝나고 났을 때 '후회 없이 했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하고 싶었다. 경험이 있어서 다른 선수들에게도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게 이슈가 돼서 부끄럽다"고 했다.
김연경 "중국 리그 이후 미국·이탈리아도 고민"
흥국생명을 떠난 김연경은 올 시즌 중국 상하이 유베스트에서 뛰게 됐다. 중국 리그를 선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김연경은 "행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국내 잔류와 유럽 진출을 고민하다가 중국에서 두 달 정도로 짧은 시즌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선택하게 됐다"고 전했다.
중국 리그에서 뛴 이후의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김연경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연경은 "중국 리그를 마친 후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면, 다른 리그로 갈 수 있는 상황이 된다.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어 김연경은 "미국에 배구 리그가 생겼다. (미국의 금메달을 이끌고 도쿄올림픽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조던 라슨에게 연락이 와서 미국에서 뛸 생각이 없냐고 하더라. 유럽도 몇 개 구단에서 얘기가 있지만, 결정된 것은 없다"고 소개했다.
김연경은 "유럽에 가게 된다면 이탈리아 리그를 경험하지 못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터키도 괜찮다. 하지만 아직 결정한 것은 없다. 중국 시즌이 끝나고 잘 결정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현역 은퇴 이후에는…"지도자·행정가·방송인 다 욕심나요"
김연경은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지만, 현역 생활은 계속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은 선수 생활 동안에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선수 생활이 아직 남았다. 다들 은퇴 이야기를 하시는데 국가대표만 쉬는 것"이라며 "목표를 잡은 것이 남은 선수 생활 동안 최고의 기량을 꾸준히 보여드리고 싶다. "'김연경이 아직도 잘하는구나!', '나이가 많이 들어도 잘하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몸 관리 잘하겠다. 그런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김연경은 현역 은퇴 이후에는 지도자, 행정가, 방송인 모두 욕심난다며 웃었다.
그는 "이전에는 지도자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해외 진출한 선수가 없어서 해외에서 했던 시스템을 가져와서 선수들을 육성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며 "최근에는 행정적인 부분을 보며, 행정가도 생각하고 있다. 또한 모든 분이 알고 있듯이 방송인 김연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방송을 해보니 새로운 것을 경험해서 좋더라. 여러 방향으로 보고 있다. 나도 내 미래가 궁금하다"고 했다.
"드디어 식빵 광고 찍었다…스티커도 간직하시길"
'식빵 언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김연경은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와 SPC삼립 모델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다.
관련 질문에 김연경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폭발했다.
그는 "식빵 광고는 드디어 했다. 광고가 곧 나온다"며 "빵은 어디서 드시지 말고, 파리바게뜨 아니면 삼립빵 추천해 드린다. 파리바게뜨 집 앞에 다 있으시잖아요. 제 얼굴 그려진 빵 드시고 스티커도 간직하시기 바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다음 올림픽 대표팀에 대해선 "4년이라는 장기 플랜을 세워서 육성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앞에 놓인 경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큰 대회 등을 바라보면 계획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방송도 많이 찍고 하지만 난 '배구인'이다. 앞으로도 뒤에서 열심히 대표팀을 도울 것이니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한다. 여자 배구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경은 강성형 현대건설 감독에게 정지윤의 레프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천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김연경은 "(강성형 감독에게) 조용히 말씀드린 건데…"라며 난감해한 뒤 "정지윤은 내가 봐도 잠재력이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갖지 못한 파워풀한 공격력이 있다. 다만 레프트는 공격뿐만 아니라 리시브, 수비 등 다 잘해야 한다. 힘든 날이 있겠지만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후배의 도전을 응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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