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제발" 머리통 깨지도록 한 남자 믿었던 사람들 이야기 [왓칭]

최원우 기자 2021. 9. 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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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친절, 사탕발림에 속아 넘어가
전재산 바치고 무보수 헌신 자처
맹목적 믿음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사이비 집단 탈출기 그린 '구해줘'
사이비 종교에 빠져 사이비에서 벗어나려는 딸의 머리통을 내리치는 남자의 모습. /구해줘

인간에게 믿음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2017년 방영됐던 드라마 ‘구해줘’는 실제로 있을 법한 사이비 종교 집단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면서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구해줘’는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이 자연스럽게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극한까지 내몰린 인간은 처음에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됐는지를 잊어버린다. 그럼에도 믿음 그 자체는 버리지 못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차라리 달콤한 믿음을 이어가고 싶어서, 혹은 믿음을 지키던 자신의 인생을 부정할 수 없어서 그렇게 된다.

사이비에 완전히 빠져 사이비를 거부하는 딸을 구타하는 아버지의 모습. /구해줘

여기 사이비 종교에 완전히 빠져버린 한 남자가 있다. 그도 한때는 아내와 쌍둥이 남매를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그나마 남은 전 재산을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날려 먹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큰아들은 학교 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충격으로 아내는 죽은 아들의 착시를 보는 등 정신 이상 상태에 빠졌다. 무당굿을 해봐도 아내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가 중심을 잡고 남은 딸을 챙겨야 했지만,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그에게 다가온 이들이 ‘구선원’이라는 이름의 사이비 집단이었다. 그에게는 그들이 구원처럼 느껴졌다.

구선원은 곳곳에 곰팡이가 핀 단칸방에서 지내던 그에게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해 줬다. 정신이 이상해진 아내를 돌봐줄 요양원을 마련해줬다. 원한다면 딸을 데리고 자신들이 생활하는 거처에서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그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자신들이 믿는 ‘새하늘님’을 믿으면, 남자도 비참한 인생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자는 조금씩 이들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최선으로만 느껴졌다. 믿기만 하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남자는 오히려 행복감마저 느꼈다.

사이비에 빠져들기 전에는 화목했던 가족. /구해줘

하지만 남자의 딸은 아빠와 달랐다.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영부’(靈父)라고 불리는 모임의 지도자가 수상했다. 그는 이 집단에서 신과 동급으로 추앙 받는 존재였다. 모두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선한 듯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맹목적 믿음을 종용하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남자였다. 그의 곁을 지키는 간부 사도들도 수상쩍긴 마찬가지였다. 항상 묘한 눈빛과 함께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종교와 영부를 향한 맹목적 믿음과 확신은 그 자체로 광기처럼 보였다.

막연하게 느껴지던 불길한 예감은 머지않아 실체로 드러났다. 이들은 신원을 알 수 없는 노숙자를 데려와서 ‘교화’를 빌미로 신도로 편입시켰다. 처음엔 친절한 척했지만, 저항하면 폭력도 불사했다. 이 집단의 간부격인 한 사도는 노숙자가 신도가 되길 거부하자 샤워기로 피가 날 때까지 머리통을 내리쳤다. 조금이라도 종교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감옥에 가둬 두고 ‘기도’를 빌미로 복부에 멍이 들 때까지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심지어 신도를 성추행하려던 간부의 모습을 목격한 어린 신도를 살해하고 시신을 처리하기까지 한다.

사이비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노숙자의 머리통을 샤워기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사이비 간부. /구해줘

그럼에도 신도들은 영부를 의심하지 못한다. 손자가 갑자기 석연찮은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 할머니. 비싼 헌금을 대가로 병을 치료받았다고 믿었지만 끝내 그 병으로 목숨을 잃은 환자. 이들은 공통적으로 “죽음이 곧 구원을 받은 것”이라는 영부의 말에 넘어간다. 그야말로 머리통이 깨지더라도 어떻게든 믿음을 합리화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들은 주고받는 인사말조차 “될지어다”다.

급기야 영부는 남자의 딸을 자신의 ‘영혼의 신부’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종교적 행사를 명목으로 성적인 욕구를 풀려 한 것이다. 이를 숭고한 일인 양 지지하는 무리 속에서 딸은 철저히 고립된다. 그녀는 극적으로 탈출을 시도해 경찰에 도움을 청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지역 유지격인 영부는 국회의원, 군수, 경찰서장과도 연줄을 맺고 있었다. 경찰들은 도움을 청하는 그녀를 “가족끼리 알아서 할 일”이라며 구선원에 넘겨준다. 급기야 완전히 종교에 심취한 그녀의 아버지는 돌아가길 거부하는 딸에게 “사탄 마귀에 홀렸다”면서 머리통을 내려친다. 그녀는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작년 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신천지 피해자들이 신천지의 방역 방해 혐의를 고발하며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조선DB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와중에도 정부 방역체계보다 종교적 신념을 우선했던 신천지 사태가 대표적이다. 전국적으로 이들을 지탄하는 뉴스가 끊이지 않고, 정부가 강한 압박에 나섰음에도, 일부 신도들은 정부 검사 요청을 거부하고, 종교 행사에 나갔다. 한번 빠지면 개인의 인생은 물론이고 한 가족이 파탄 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극단적 종교적 믿음으로 반인륜적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국가(IS)도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악한 자가 살인하지 못하게 하려면 법이 필요하지만, 선한 자가 살인을 하게 만들기 위해선 종교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있을까.

문제는 어쩌면 맹목성의 부작용이 비단 종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구해줘’는 사이비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부조리를 담아내려 했다.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에 가족을 속인 군수, 비뚤어진 부성애 때문에 받아선 안 될 돈을 받은 공직자, 배신한 친구에 대한 미움 때문에 집단 패싸움에 나선 건달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온다. 그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어쩌면 소신이나 신념, 가치관이라는 이름의 맹목성이 우리의 눈을 흐리고 귀를 멀게 하고 있진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일은 쉽지 않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은 그보다도 어렵다는 것을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개요 드라마 l 한국 l 2017년 l 16회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맹목적 믿음의 한계는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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