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판사' 문유석 작가 "디스토피아 설정? 코로나19로 달라진 세계 무서워" [EN:인터뷰①]

박은해 2021. 9.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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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박은해 기자]

'악마판사' 문유석 작가가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극 중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를 밝혔다.

8월 22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극본 문유석/연출 최정규)는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와 함께 등장한 판사 강요한(지성 분)이 '모두의 영웅인가, 아니면 법관의 가면을 쓴 악마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을 그린 드라마. 사람 냄새 나는 판사 이야기 JTBC '미스 함무라비'를 집필한 문유석 작가가 판사 퇴직 후 극본을 맡는 첫 작품으로 관심을 모았다.

최근 뉴스엔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문유석 작가는 "이제 더 이상 이 훌륭한 배우분들의 연기를 주말마다 볼 수 없다는 게 슬프다. 시청자 모드로 보고 있었다. 최초에는 20부작으로 구상했었는데 그게 가능했다면 더 찬찬히 이야기도 풀고 배우분들의 연기도 더 볼 수 있었겠다 싶어 아쉽기도 하다. 성원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시청자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는 소회를 밝혔다.

'악마판사' 배경이 되는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에서 법과 정의 시스템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가짜 뉴스를 퍼뜨려 인기를 얻은 정치 유튜버가 대통령이 되고, 표적 수사로 무고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사가 법무부 장관까지 오르는 세상이다.

이와 같은 세계관을 설정한 계기에 대해 문유석 작가는 "코로나19 사태로 세계가 한순간에 달라지는 걸 보며 무서움을 느꼈다. 스페인에서는 요양원 직원들이 도망가 버려서 방치된 노인들이 집단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경제가 붕괴되어 생계가 곤란한 이들이 폭증하고, 초강대국 대통령은 의학 전문가들의 권고를 가짜 뉴스 취급하는데 지지자들은 광적으로 열광하며 의회의사당을 습격하고...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되고 마는 걸까 생각하다가 ‘블랙 미러’나 ‘브이 포 벤데타’ 같은 근미래 디스토피아물처럼 일종의 사고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문유석 작가는 "이런 세상이라면 현실에 대한 불만을 증오와 배타주의로 해소하려는 극단주의 세력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10회 죽창 재판 때 죽창이 선언문을 낭독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첫 마디가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익만을 좇는 백만 명의 힘에 맞먹는다'이다. 이는 2011년에서 노르웨이에서 무려 77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극우 테러리스트 브레이빅이 남긴 트윗 내용에서 따 온 것"이라며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걱정스러운 현상을 극에 녹여 낸 결과 해외 시청자들이 자기 나라 얘기라며 적극 공감하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한국 콘텐츠에 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은 만큼 창작자들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글로벌한 주제들로 관심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고 덧붙였다.

'악마판사' 타이틀롤 강요한은 악을 무자비하게 응징하는 다크 히어로다. 올해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tvN '빈센조'의 빈센조 까사노(송중기 분), SBS '모범택시' 김도기(이제훈 분)와도 결을 같이한다.  이처럼 '악마판사'에는 마냥 선한 인물보다는 힘세고 가차 없는 자가 내 편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의,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판타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문유석 작가는 악을 악으로 처단하는 강요한 캐릭터에 대해 "다크 히어로에 대한 열광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다. 문제는 그 분노가 폭주하기 시작하고 미디어와 정치 권력이 이를 증폭시키며 악용하면 폭력과 극단주의, 혐오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는 점이다.  ‘악마판사’의 세계는 이미 그 악몽이 극에 달하여 시민들의 건강한 연대로 문제를 해결할 동력조차 사라진 가상의 디스토피아이다. 강요한 식의 극약 처방 외에는 마땅한 대안조차 없는 세상이란 참 무섭고도 슬픈 세상"이라며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런 세상을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민들은 정치, 사법, 언론 등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 ‘시스템’에 해당하는 이들이 다크 히어로가 되어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 할 일을 묵묵히 잘해서 다크 히어로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자기가 강요한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허중세일 뿐"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또 극 중 강요한의 마지막 재판에 대해 문유석 판사는 "사실 그것은 폭탄 테러를 생중계한 것에 불과하다. 합법적인 재판 절차가 아니고 제시된 증거 역시 동영상일 뿐 조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청자인 우리는 전지적 시점에서 그것이 진실임을 알지만 극 중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에서는? 잠깐 폭로 동영상을 보고는 압도적 다수가 적법절차에 따른 재판 없이 폭탄 테러에 동의를 표시한 것이다. 만약 허중세가 딥페이크 기술로 정반대 영상을 그럴듯하게 조작하여 요한의 동조자들을 처단하려 들었다면 어땠을까?"라며 새로운 해석 여지를 제공했다.

"묘한 것은 14회 전기의자 사형집행에 대해서는 극중 시민들이 불편함을 느끼며 망설이는데, 16부 폭탄 테러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찬성했다는 점입니다. 누르는 행위와 상대방의 즉각적인 고통 사이의 직접성, 노골성의 차이일 뿐 본질은 다르지 않은데 말이죠.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가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 인간들은 놀라울 만큼 쉽게 어떤 방향으로 유도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치주의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지요. 극 중 악역들이 처단당하고 새롭게 그 자리를 차지한 엘리트들 역시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행태들을 보입니다. 결국 더디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시스템이 온전하게 바뀌어야 진정한 변화가 오겠지요. 가온의 독백, ‘요한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가 이 이야기의 진정한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사진=tvN 제공)

뉴스엔 박은해 p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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