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노선 '잇느냐 끊느냐'..9년 만에 '포스트 스가' 기로에 선 일본

김소연 2021. 9. 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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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자민당 리버럴의 적자, 당선 위해 '아베 노선'과 가까워져
이시바..아베의 최대 라이벌, 당선되면 한-일 관계 극적 개선 기대
고노..일본 내 최고 '지한파'지만 지난 갈등 때 한-일 대결 총지휘
다카이치..대표적 여성 극우 정치인 당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3일(현지시각) 도쿄 총리관저에서 이달 말 치러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이로써 일본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에 휩싸이게 됐다. 도쿄/EPA 연합뉴스

29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가 지난 2012년 말부터 9년 동안 이어진 ‘아베 노선’과 일본 사회가 결별하는 주요 ‘분기점’이 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누가 새 자민당 총재가 되는지에 따라 보수적 이념을 바탕으로 중국 견제를 위해 미-일 동맹을 강화한다는 이른바 아베 노선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지난 3일 “코로나19 대책에 전념하기 위해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포스트 스가’를 노리는 자민당 내 차기 주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5일 현재까지 일본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등이 출마를 선언했거나,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로 기록된 아베 전 총리는 2012년 말 집권해 지난해 9월까지 무려 7년 8개월 간 집권했다. 1년이라는 단명으로 끝나게 되는 스가 정권은 디지털청 설치, 탈탄소 추진 등 내치 영역에선 독자적인 정책을 내걸었지만, 대외 정책에선 미-일 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봉쇄한다는 아베 노선을 적극 답습했다.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한국과 관계 개선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북한에 대해선 기존 ‘적대시 정책’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는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한 기사다 전 정조회장이다. 기시다는 아베 정권에서 4년 반이나 외무상으로 일하는 등 아베 노선을 실무에서 지탱해왔다. 특히, 지난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한 일본 쪽 당사자이기도 해 역사 문제에 있어 한국과 관계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운신의 폭이 좁은 편이다. 또, 당선에 대한 압박 때문인지 지난 6월 당 내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드는 의원연맹’을 만들어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를 최고 고문으로 영입했다. 이어 지난달 26일 총재 선거 출마 선언 뒤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등 아베 노선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총리로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민당 내 온건파를 대표하는 기시다파의 전통에 맞게 합리적인 대외 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

또다른 유력 후보인 이시바 전 간사장은 아베 노선과 선을 긋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아베 전 총리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두번 맞붙었지만 모두 패했다. 이시바는 모리토모 학원 문제 등 아베 전 총리와 관련한 스캔들에 대해 지난 3일 <티비에스>(TBS) 방송에 나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계에서 손꼽히는 안보 전문가로 한-일 간 안보 협력을 심화하기 위해 역사 문제에 대해선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지난 2019년 8월 한국의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등 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을 당시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이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마주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에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하고, 야스쿠니 신사도 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세번째 유력 후보인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은 일본 내 여러 여론 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후보 1위로 꼽힌다. 당의 방침과 달리 ‘탈원전’이나 일본 보수층이 반대하는 ‘모계 일왕’을 검토하자고 주장하는 등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또 규제를 없애고 중앙 정부 권한을 줄여, 지방이나 민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과감히 맡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본 정계 내 최고의 지한파로 꼽히지만, 한-일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로 정면 충돌했던 2018~2019년 외무상을 맡았던 탓에 집권한다 해도 갑작스런 정책 전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군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로 유명한 요헤이가 그의 부친이다. 평소 직언을 서슴지 않은 타입이지만, 최근엔 몸을 사리는 탓인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은 아베 전 총리와 한동안 파벌에 속했던 여성 극우 정치인으로 꼽힌다. 애초 출마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지만, 아베 전 총리의 지지를 받으며 몸값이 다소 올라갔다. 3일 밤 민영방송 <비에스(BS)후지>에 출연해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밖에 노다 세이코 간사장 대행, 시모무라 하쿠분 정조회장 등이 출마를 모색 중이지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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