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36] 알 수 없어요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1. 9. 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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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바다,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

내 좁은 방.

-황인숙(黃仁淑·1958∼)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진담을 하면 사람들은 농담으로 알아듣고, 내가 백 퍼센트 농담을 하면 진담으로 알고 화들짝 놀란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겪고, 오해하고 오해받는 게 현대인의 일상이지만, 친한 친구들은 심각한 오해를 하지 않는다. 사랑하면 이해한다.

내가 그를 안다고 할 수 있나? 우리는, 황인숙 시인과 나는 1년 혹은 2년에 한 번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먹는다. 인숙 언니가 부르면 나는 무조건 나간다. 나가면 대개 사람이 여럿 앉아 있다. 인숙 언니와 함께한 자리에서 불쾌한 일은 없었다.

그의 시는 투명하다. 편하게 읽히는 듯하다. ‘알 수 없어요’의 3연처럼 문득 이 지붕에서 저 지붕으로 건너뛰는 고양이처럼 날렵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거미줄처럼 얽힌 상념의 타래를 따라가다 보니, 바닷가에 와 있다. 생각의 바다에 빠져 우주를 헤매다 깨어나 보니, 내 방. 너무도 익숙한, 너무도 낯선…. 나도 나를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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