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해오름극장 리뉴얼 "합격"..'음향' 국제적 수준과 견줘도 손색없어
[경향신문]
예술의전당·롯데콘서트홀에 버금
“어떤 장르도 부족함 없이 공연”
“잔향, 과함도 덜함도 없어 인상적”
3년7개월간의 리모델링을 마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6~8월 시범 운용을 거쳐 9월 공식 재개관했다. 극장의 핵심인 무대, 객석, 로비를 전면 개보수한 것은 1973년 개관 이후 처음이다. 서울 남산에 자리한 국립극장에는 3개의 공연장이 있다. 해오름, 달오름, 별오름이라는 명칭을 각기 지녔다. 그중에서도 해오름극장은 국립극장을 대표하는 메인홀이다. 하지만 공연 외에 각종 집회와 국가 행사 등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까닭에 ‘국립’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수준의 공연장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총사업비 658억원이 소요된 이번 리모델링에 공연계의 관심이 쏠린 이유다.
이제 결과를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경향신문은 시범 운용 기간에 몇 편의 공연을 직접 관람하는 한편, 새로 개관한 해오름극장에서 본인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전문가들의 평가를 들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합격”이다. “해오름극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연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음향이 대폭 개선됐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잠실의 롯데콘서트홀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다” “국제적 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등의 평가들이 나왔다.
시범 운용 기간 중 두 편의 오페라가 관객을 만났다. 일단 객석의 시야가 개선돼 무대가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에서 주인공을 맡은 바리톤 고성현의 노래는 객석 후미에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 오페라의 백미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객석 전체에 부드럽게 울려퍼졌다. 지난 8월 말 오페라 <박하사탕>을 무대에 올렸던 이건용 작곡가는 “그동안 해오름극장에서 마이크와 앰프를 사용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면서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어쿠스틱 극장’으로 재탄생했다”고 평했다. 이어 “마이크 없이 공연해야 하는 기초예술 장르를 마음껏 선보일 수 있게 됐다”며 “전통음악, 오페라, 관현악 등 어떤 장르도 부족함 없이 공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호평을 내놨다.
오페라 <박하사탕>의 윤호근 지휘자도 “음향이 확실히 업그레이드됐다”면서 “독일 등 유럽에서도 오페라를 지휘해봤는데, 그 지역 공연장들과 비교해도 사운드 측면에서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1층뿐 아니라 2·3층 객석에서도 음향을 체크해봤다”는 그에게 이른바 ‘명당’을 묻자 “3층에서 들은 소리가 최고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족한 점도 없지 않다. 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가 좁은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오케스트라 피트’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움푹 들어간 공간이다. 오페라를 공연할 때 오케스트라는 이 공간에서 연주하기 때문에 관객의 시야에는 무대 위 성악가들만 들어온다. 윤 지휘자는 “피트가 좁아 60여명 단원들이 앉기에 좀 버겁다”면서 “지휘자가 피트의 단원들과 무대 위 성악가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각도와 높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고 했다. “피트가 좁다”는 지적은 이건용 작곡가에게서도 나왔다. 이 때문에 “규모가 큰 작품보다는 소담한 사이즈의 작품에 더 어울릴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모차르트 혹은 바로크 오페라를 하기에 매우 적절한 극장”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새로 극장을 오픈하면 부족한 지점들도 눈에 띄기 마련”이라면서 “앞으로 조금씩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점에서 해오름극장의 음향을 좀 더 세밀히 살필 필요가 있겠다. 공연장은 하나의 악기이고 음향이야말로 생명인 까닭이다. 김철호 국립극장 극장장은 “해오름극장 리모델링은 2017년 10월 시작됐는데, 내가 극장장으로 부임했던 2018년 10월에는 이미 공사가 한참 진행된 상황이었다”고 했다. “부임해보니 설계도에 음향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습니다. 일단 공사를 중지시켰지요. 세계적인 극장들의 핵심은 다들 음향이지 않습니까? 저희도 ‘국립’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극장을 선보이려면, 또 전 세계 예술가들과 순수예술로 교류하려면 실내 건축음향을 제대로 구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산을 186억원 증액하고 공사 기간도 예정보다 길어진 이유입니다.”
곧바로 일부 설계 변경이 이뤄졌고 1563석이었던 객석은 1221석으로 축소됐다. 관객 시야를 더욱 확보해 관람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잔향 시간(소리가 실내에 머무는 시간)을 1.65초로 설계했다. 객석 내벽에는 가변식 음향제어 장치인 ‘어쿠스틱 배너’를 48개 설치해 공연 장르에 따라 잔향을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객석 곳곳에서 균질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1~3층 어디에서든 잔향의 평균값이 1.65초로 거의 같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김 극장장은 “이번이 세계 수준의 음향을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면서 “임기 중에 그 일만큼은 꼭 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 마지막 평가를 들을 차례다. 마침 지난 2일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재개관 이후 첫번째 클래식 연주회를 펼쳤다.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연주했다. 공연장 성능을 테스트하기에 적절한 선곡이다. 박선희 코리안 심포니 대표는 이런 평가를 내놨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잔향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악기 소리가 섬세하게 들렸습니다. 연주자들이 음악의 색채나 뉘앙스를 변화시키려고 해도 콘서트홀이 이를 받쳐주지 않으면 불가능하거든요. 한데 해오름극장에서는 그게 가능했습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과는 또 다른 개성을 지닌, 훌륭한 콘서트홀이 새로 탄생했습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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