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과 거짓, 선과 악'..모호한 윤리적 경계서 흔들리는 현대인 [리뷰]
[경향신문]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몇 마디 말이나 행동으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영화 <좋은 사람>(감독 정욱)은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101분의 상영시간 내내 생각하게 유도한다.
고등학교 교사 경석(김태훈)이 폐쇄회로(CC)TV를 돌려보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학생 한 명이 아무도 없는 교실로 들어가는 영상이다. 경석은 반에서 일어난 현금 도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죄를 자백하면 모든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고 제안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학생 중 한 명이 경석을 찾아와 세익(이효제)이 범인 같다고 지목한다. 경석은 세익을 따로 불러 그날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적어달라고 한 뒤 자리를 비워준다. 마침 이혼한 아내가 딸 윤희를 하루만 맡아달라고 요청한다. 경석은 윤희를 잠시 학교로 데려왔다가 차에 혼자 남겨둔 채 세익을 찾는다. 세익은 아무것도 적지 않은 상태다. 차로 돌아가니 그사이 윤희가 사라졌다. 윤희는 혼자 차를 떠났다가 인근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중상을 입은 윤희는 생사가 위태롭다. 교통사고 가해자는 어떤 학생이 윤희를 길가에 밀어버리고 도망쳤다고 말한다. 이 역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학생들의 선량함을 믿으며, 설령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금세 뉘우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딸의 동영상을 보며 ‘아빠 미소’를 짓는다. 전처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을 서먹해하는 딸과도 가까워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경석의 선함은 바로 시험받는다. 그의 선함은 그다지 뿌리 깊지 않으며,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작은 의심의 씨앗이 뿌려지자, 경석은 싹을 제거하지 못한다.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누구라도 경석의 상황이 된다면 비슷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신감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영화 초반부 경석은 학생들에게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실수를 인정하고 되돌리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구두선에 불과함을 스스로 증명한다.
관객은 경석과 함께 끝나지 않는 미로 같은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한다. 영화가 끝나도 미로를 빠져나왔다는 통쾌함은 없다. 참과 거짓,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가 안개처럼 관객을 둘러쌀 뿐이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알 수 없었던 타인의 비밀, 자기 마음속의 그늘에 조금씩 접근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장르를 ‘심리 미스터리’라 해도 좋겠다. 연쇄적인 사건을 무리 없이 엮어낸 감독의 자작 시나리오도 훌륭하다. 지난해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메가박스상 등 2개의 상을 받았다. 9일 개봉.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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