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보장" 시위 여성들에게 폭력으로 답한 탈레반

이윤정 기자 2021. 9. 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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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루·공포탄 쏘며 강제 해산
공포 통치로 회귀 우려 커져

탈레반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권 보장 요구 시위에 나선 여성들에게 탈레반은 4일 최루탄을 쏘고 경고 사격을 하며 폭력으로 답했다. 탈레반이 여성 인권을 탄압했던 과거에서 달라지겠다고 했으나 약속이 빈말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지 매체 톨로뉴스는 이날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최루탄과 공포탄 등을 발사해 여성 시위대를 해산시켰다고 보도했다. 톨로뉴스가 공개한 영상에는 총을 든 탈레반 대원들이 거리에서 여성들을 해산시키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이 탈레반 조직원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에 참여한 소라야는 로이터통신에 “탈레반이 여성의 머리를 때렸고 여성들은 피투성이가 됐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이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거나 폭행하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지만, 일부 게시물에는 상처를 입은 여성의 얼굴이 나오기도 했다.

아프간 여성들의 시위는 지난 2일 서부 헤라트에서 시작됐다. 여성 50여명이 거리로 나와 현수막과 팻말을 들었다. 일부는 부르카 없이 얼굴을 드러냈으며 선글라스를 쓴 사람도 있었다. 이어 시위는 수도 카불에서도 이어졌다. 여성들은 3일부터 대통령궁 인근에서 교육과 취업 기회, 자유 등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여성들은 “우리는 모두 함께다. 억압을 깨뜨릴 것이다” “여성이 없는 국가는 곧 언어가 없는 곳과 같다”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자유가 우리의 신조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 대신, 머리에 히잡을 둘렀다. 한 탈레반 대원이 시위대를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화가 나 돌진하면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여성들의 연이은 시위는 탈레반이 과거 집권기(1996~2001년)에 자행한 여성 탄압이 재연될 것이라는 공포에서 비롯됐다. 당시 여성들에 대한 교육이 금지됐으며, 일할 기회도 박탈됐다.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 없이는 외출할 수 없었고 탈레반 대원과의 강제결혼도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지난달 15일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은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지만 장관직에는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탈레반 지도부의 공언과는 달리, 현장에 있는 탈레반 대원들은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한 여성을 총으로 쏴 죽이고 광고판의 여성 얼굴을 검게 덧칠하는 등 여성 인권 암흑 시대를 예고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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