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13] 부자가 사는 동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1. 9. 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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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장충동이다. 서울 주변은 바위가 노출된 골산(骨山)이 둘러싸고 있지만 남산만큼은 흙으로 뒤덮인 육산(肉山)이다. 골산에서는 기도발이 생기지만 육산에서는 돈이 붙는다. 삼성의 이병철, 이건희는 장충동에 집이 있었다. 풍수에 거의 전문가급 식견이 있었던 이병철은 남산 자락이 내려온 장충동의 재물맥(財物脈)을 인지하고 있었다. 돈이라는 것은 눈이 9개가 달려서 그중 1~2개는 땅의 기운이 좋은 곳을 찾기 마련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CJ 이재현 회장 아들인 이선호가 고 이건희가 소유했던 장충동 1가 저택을 196억에 사들였다고 나왔다. 삼성가의 주손(胄孫)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매입이다.

1960~70년대가 장충동이었다면 80년대 들어와서는 한남동이 재벌을 비롯한 한국 상류층의 주목을 받았다. 한남대교가 개통되고 자동차와 도로가 보편화한 탓이다. 특히 이병철은 한남동이 가진 강물의 이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한강이 돌아 나간다는 것은 돈이 모인다는 뜻이다. 리움이 한남동에 있는 이유다.

돈도 돈이지만 기도발을 더 중시했던 통일교의 문선명은 유엔 빌리지 끝자락에다 본인의 거처 겸 신도들의 예배 장소였던 공관(公館)을 잡았다. 2006년 무렵 필자도 이 공관에서 문 총재와 차를 한잔한 적이 있었는데, 밑에서 올라오는 땅기운이 강한 곳이었다고 기억한다. 보통 사람은 힘들 수 밖에 없는 강한 기운이 올라오는 용의 대가리 부위에 해당하는 터였다. 문선명은 이 터에서 재물도 축적하고 세를 모아 경기도 가평의 흰 대리석 건물인 천정궁(박물관)을 지었다.

성북동은 평창동보다는 터가 온화하다. IMF 때에도 평창동은 빈집이 많이 나왔지만 성북동의 쓸만한 집은 별로 나오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이면서도 시골의 산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산책 다니기가 좋다. 호암 이병철은 성북동을 특별하게 주목하지는 않은 것 같다.

호암이 70년대 초반 장충동에서 살 때는 문간방에 여자 도사가 몇 달씩 상주하고 있었다. ‘홍 선생’이라고 불렀다. 집으로 들어오는 외부 손님들은 홍 선생의 ‘영발 체크’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불순한 의도를 숨기고 들어오는 사람을 감지하기 위한 특수한 검문검색이었던 셈이다. 이 검색을 받아본 어느 재벌가의 나이 든 안주인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배를 손으로 슬쩍 만져 보더니만 ‘따뜻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구먼요’라는 말을 하더라고. 어찌 이 사실을 알까 하고 깜짝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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