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의 세계+]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

한겨레 2021. 9. 5. 16: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최근 탈레반에 함락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의 일을 도왔던 400명가량의 사람들이 수송기와 전용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최유안의 단편소설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보통 맛> , 민음사)를 떠올렸다.

소설은 난민 구호와 관련된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영은'이 인터뷰를 위해 난민 기구를 찾았다가 과거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시리아 출신의 '라일라'를 떠올리며 무참한 슬픔에 이르는 과정을 담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해진의 세계+]

조해진ㅣ소설가

최근 탈레반에 함락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의 일을 도왔던 400명가량의 사람들이 수송기와 전용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최유안의 단편소설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보통 맛>, 민음사)를 떠올렸다. 소설은 난민 구호와 관련된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영은’이 인터뷰를 위해 난민 기구를 찾았다가 과거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시리아 출신의 ‘라일라’를 떠올리며 무참한 슬픔에 이르는 과정을 담는다. 영은이 난민 기구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무하마드는 5년 전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난민 캠프에서 인연을 맺었던 라일라의 남동생인 ‘아술’이었던 것이다. 당시 난민 캠프에서 봉사 중이었던 영은은 이 남매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려 했지만 마음만 앞섰을 뿐, 열정이 식고 일에 지치면서 결국 라일라 남매를 두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뒤 라일라가 난민 캠프에서 화재로 숨졌다는 것을 영은은 전해 듣는다. 아술은 말한다. 누나는 한국으로 가서 당신을 찾고 싶다고 했다고, 당신을 만나 말하고 싶어 했다고, 우리는 결코 버려지거나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특별기여자’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사람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비자를 받게 될 것이고 한국에서 취업도 할 수 있다고 뉴스는 전했다. 그들이 짐을 풀 충북 진천군에는 환영의 플래카드가 걸렸고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도 우호적인 편이다. 평소 우리 사회가 난민, 특히 이슬람 국가에서 유입된 난민에게 보였던 적대감을 상기하면 이런 분위기가 놀라울 정도로 뜻밖이었다. 반가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갖는 이 환대의 마음이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도 들었다.

아무리 선의여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거나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면 그 애초의 마음은 더 쉽게 훼손되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될 때도 있다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영은처럼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나는 오래전 벨기에를 떠도는 탈북 난민을 소설에 쓰면서 한국에 있는 탈북인 소녀와 한달에 한두번씩 만나 밥을 먹기도 하고 공부를 돕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해외입양인연대’에서 소개받은 네덜란드 국적의 입양인과 한국어 수업을 했다. 모두 아무런 대가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십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들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그들 중 한명은 어느 날 갑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었고 또 다른 한명은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만남을 연기하다가 멀어지고 말았다. 책임진다는 말은 필요조건이 많다는 점에서 무거운 동시에 언제라도 무너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가볍기도 하다.

문학잡지 <악스트>에 보고서 형식의 단편소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쓴 뒤 대한민국예술원 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이기호 소설가의 행보는 그런 의미에서 ‘책임’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가 지적한 예술원의 문제점이랄지 개혁을 위한 여러 제안에 대한 동의(예술원 내부에서의 개혁 시도를 기다리다가 서명할 때를 놓치긴 했지만 이 지면을 빌려 동참의 뜻을 전하고 싶다)와 별개로 자신이 쓴 소설에 책임지려는 그 태도에서 한 사람으로서나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나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런 생각도 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방식은 결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사람들을 향해 우리가 보여준 환대와 제도적인 신분 보장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그들은 금세 잊힐지 모르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 중 일부가 문제라도 일으킨다면 여론은 다시 적대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지만, 그 어떤 날이 오더라도 이렇게 한 발을 내디뎠으니 말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