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힙지로' 속 노동자들을 아시나요?
“누가 우리 자식들이 이런 현장에서 일하길 바라겠습니까?”
“누가 커피를 마시라고 권해도 한 잔도 마시지 않습니다. 지저분한 화장실을 사용하기 싫어서 그렇습니다.”
서울시 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가 주최하고 전태일재단이 협력한 ‘2021 작은 공론장-서울 도심 제조노동자’ 행사에서 나온 말들이다. 서울 도심 제조노동자들의 노동현장 실태를 공유하고 그 과제를 비대면으로 논하는 자리였다. 주얼리 가공, 봉제, 제화 부문 노동자들의 발언이 모니터에서 줄을 이었다. 그리고 채팅창에 이런 말이 올라왔다. “주얼리도 마찬가지군요….”, “그 업종도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네요….”
성수동, 을지로, 종로3가…. 누군가에게 이곳들은 ‘인스타 포토 스팟’일 뿐이다. 요즘 ‘인싸’들이 즐겨찾는 카페들이 속속 들어선 이곳은 MZ세대들이 선호하는 ‘힙지로’이며, ‘인스타 감성’을 쫓아 여유를 즐기려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조명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곳은 도심 제조노동업의 성지였고, 지금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도심 제조노동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곳들은 빠른 속도로, 아주 확실하게 퇴락하고 있다. 하청 가격경쟁이 붙어 납품 단가는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급여뿐 아니라 근로조건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젊은 직원이 신규 채용되어도 6개월을 채 버티지 못하고 나가버린다. 무늬뿐인 안전 점검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식사를 하는 공간조차 화학약품 보관소가 된 지 오래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의 발제를 보면, 도심 제조노동업의 특징은 ‘영세성’과 ‘비공식성’이다. 10인 이상을 초과하는 제조업체가 극소수이며, 4대 보험 가입 원칙을 지키는 업체 수도 많지 않다. 이제는 여기에 특성 하나를 더 보태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서울시 내 제조노동업의 실태를 명확하게 목도할 수 있다. 바로 ‘공간의 이중성’이다. ‘힙지로’를 찾아온 MZ세대 시민은 바로 뒷골목에 즐비한 인쇄업 노동자들의 깊은 한숨을 듣지 못한다. 성수동 ‘핫플’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이들은 가죽 공장의 ‘쩐내’가 밴 가죽 냄새를 맡지 못한다.
이전에는 노동 문제를 다루는 전선이 비교적 명확했다. 부당한 하청 계약, 근로법 준수 여부 같은 요소들만 따지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노동의 전선은 ‘보이지 않는 문제’로 전락해가고 있다. 노동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이 사회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지금의 도심 제조업노동이 마주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단지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졌을 뿐이지,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때와 달라진 건 없다.” 한 모둠원의 이 말에서 그나마 실마리를 찾을수 있다. 분명 진척이 없고 몹시 더뎌 보이겠지만, 우리는 더 많이, 더 넓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부터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이야기와 해결책을 함께 나눠야 한다. 도시의 공론장이 현실화할 때, 우리는 비로소 출발선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공론장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중장년 노동자들의 재교육, 기본소득, 노동 감독권 실질화 등의 문제는 그 기반이 확립된 후에야 의논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세상은 조금씩 좋아질 것이라 확신한다.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es)가 주장했듯 사회적 운은 언제나 중립 상태라고 믿는다. 물론 ‘운’은 열악한 환경에서 20~30년을 보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유독 요원한 해결책일 수도 있다. ‘운이 좋아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다행이라는 사람과 ‘운이 좋아서’ 오늘 하루 다치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사람이 균등한 운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마저 지나치게 사변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질문에 정직하게 대면하지 못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노동 현실이다.
변윤재 서울시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 기자단(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 사진 전태일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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