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골목도 이웃끼리도 '모나지 않게 어울려 살도록'

김중미 2021. 9. 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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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짜 지켜내야 할 것은 이일훈 선생의 건축 철학이다. '채나눔'의 정신,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동선을) 늘려 살기'.
인천 동구 만석동에 있는 아이들 공부방에 다니는 중학생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영화제작을 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청소년기에 도시로 와서 2㎞ 되는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는데 등굣길이 지루한 줄 몰랐다. 산동네의 판잣집과 주택가의 양옥, 개량 한옥을 보며 내부 공간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학교이거나 집이었다. 상상은 평면도로 그려졌다. 고등학교 때는 교과서마다 평면도로 빈 면이 없을 정도였다. 가끔은 폐열차, 폐버스, 혹은 큰 버드나무 기둥 안에다 집과 도서관을 들이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의 공간들이 나의 이야기 집이었던 것 같다.

1998년, 서른여섯에 드디어 상상이 아닌 진짜 집을 짓게 되었다. 60년이 넘은 무허가 판잣집에서 10년 동안 공부방을 하며 두 아이를 낳아 키웠는데 그 집이 도로 부지라 했다. 공부방이 없어지면 안 되기에 무리해서 근처에 있는 대지 34평(약 112㎡)을 샀다. 주거환경지구여서 그나마 건폐율이 높았는데도 집을 지을 수 있는 바닥 면적은 20평(약 66㎡)이 채 되지 않았다. 집을 지을 돈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 무모한 계획을 건축가 이일훈 선생이 맡아주셨다. 처음 만난 날 선생은 우리에게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물으셨다. 아이들이 사는 집은 좁고 불편한데 공부방만 좋은 집이면 안 되었다. 그래서 ‘새 집 같지 않은 집’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날 선생께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 골목을 안내해드렸다.

일제강점기에 노동자 사택이었던 나가야 주택과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지은 판잣집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인천 만석동 골목은 선생의 건축 철학인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동선을) 늘려 살기’가 실현되고 있는 곳이었다. 만석동 사람들은 공간이 좁은 실내 대신 집 밖 골목으로 나와 살았다. 옆집·앞집·뒷집 사람들과 늘 얼굴을 맞대고 살았고, 다락과 옥상의 공간들을 나누며 살았다. 건축에 문외한인 우리도 이일훈 선생의 ‘채나눔’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은 2005년 출간한 〈모형 속을 걷다〉에서 산동네 집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독한 가난이 바탕이고 위생 환경과 거주 조건이 나쁜 건 사실이지만 집 짓는 방식과 삶터를 이루는 기본 질서가 유지되는 미덕이 있다. 누더기라도 재료의 낭비가 없으며 한 치 한 뼘의 치수에서 사치와 허영을 찾을 수 없다. 일단 물질을 다룸에 있어 물질이 귀함을 안다. 옆집보다 높은 집도 없고 크기도 그만그만해서 위화감이라는 것이 없다.(…) 골목길의 공동성을 존중하며 옆집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모나지 않은 해법이 달동네 건축의 가장 큰 미덕이다.” 건축에서는 공간에 담기는 삶이 먼저라고 하셨던 선생은, 집이 그 시대와 주변 환경과 서로 모나지 않게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다. 1998년 초겨울, 새로 들어선 공부방에는 만석동 골목과 판잣집이, 일제강점기 노동자 사택의 창문이, 다락과 장독대로 이어지던 가파른 계단이 그대로 들어와 있었다.

새 공부방은 다락까지 합쳐 14평(약 46㎡) 남짓이던 예전 공부방보다 두 배나 넓었고, 공장 화장실을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여전히 좀 불편했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을 밖으로 내고, 가뜩이나 좁은 대지에다 이웃들이 모여 쉬며 이야기를 나눌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이들이 쓸 공간이 더 넓었으면 했지만, 밖에 있는 그 공간 덕분에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놀았고 우리는 이웃과 더 가까워졌다. 이일훈 선생이 ‘기찻길 옆 공부방’에 담은 ‘채나눔’의 정신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아주 잘 어울렸다.

국어사전에 등재되면 좋겠다, ‘채나눔’

지난 7월2일 건축가 이일훈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폐암 진단을 받고 입원해 계신다는 소식을 들은 지 한 달 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선생의 작품들이 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기찻길 옆 공부방’이 있는 만석동도 다시 재개발 이야기로 들썩인다. ‘기찻길 옆 공부방’만은 지켜내자고 공부방 식구들과 다짐하지만, 우리가 진짜 지켜내야 할 것은 선생의 건축 철학인 ‘불편하게 살고 밖에 살면서 늘려 살아가기’이다. 집이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 ‘돈’이 된 세상에서 ‘채나눔’은 집의 본래 의미를 일깨운다. 건축가 이일훈 선생의 ‘채나눔’ 정신이 잊히지 않도록 국어사전에 등재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꾼다.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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