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년 걸리는 암호해독 10시간 만에 끝낸다.. 4차산업혁명의 꽃 '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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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의 이기를 제공한 정보기술(IT)과 전자산업의 발전에는 반도체 집적회로(IC)를 빼놓을 수 없다. 회로를 구성하는 각 모듈 안에는 트랜지스터와 같은 소자가 채워져 있다. 트랜지스터는 0과 1 이진법 기반의 비트(bit)를 기본 요소로 삼아 전자(electron) 등 정보 흐름을 제어하는 스위치이자 통로 역할을 한다. 이런 간단한 처리기들이 수백억개 집적되고 회로를 이루면서 고속 연산을 가능케 하는 게 현재 디지털(Digital) 기술이다.
기술의 발전은 더 작은 크기에 더 강력한 성능을 담은 제품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반도체 속은 복잡해져 갔다. EUV(극자외선) 기술을 활용해 수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로 공정 초미세화도 이뤄지고 있으나 앞으로 발전속도가 둔화되고 물리적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까지 공정이 미세해진 결과 전자가 트랜지스터 제어에서 벗어나는 ‘양자 터널링’ 현상도 발생해 반도체 기업들을 애먹인다.

신용녀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NTO(최고기술임원)는 “전구로 신호를 보내는 것을 예로 들면 기존 컴퓨터는 불을 켜고 끄는 두 가지 상태 값만 있다”며 “쉽고 간편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지만 한 번에 하나의 정보만 전달한다. 의미 있는 특정 정보를 전달하려면 모스 부호 같은 규칙에 맞춰 전구를 깜박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자컴퓨터는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전구라 더 많은 상태 값을 만들 수 있어 다양하고 복잡한 정보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다”며 “기존 컴퓨터로 10억년이 걸리는 계산식을 양자컴퓨터는 100초 내 끝낼 수 있다. 단순히 현재 성능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실현시킬 수 있기에 양자컴퓨팅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2019년 구글은 53큐비트의 양자컴퓨터 ‘시커모어’를 공개하며 현존 최고성능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는 연산속도를 가능케 하는 이른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를 처음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양자컴퓨터에 유리한 측면이 있는 수학 문제이긴 했지만 슈퍼컴퓨터로 1만년 이상 걸리는 것을 양자컴퓨터로 3분20초 만에 풀었다. 이 사건은 양자컴퓨터에 조명이 쏟아지는 계기가 됐다.

예를 들어 신약·신소재 개발에 있어 복잡한 분자구조는 많은 경우의 수를 가져 기존 컴퓨터로는 사실상 계산이 불가하다. 양자컴퓨터는 단백질 3차원 구조 분석 등에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이를 풀어낼 수 있다. AI 학습을 위한 전력·시간도 줄어든다. AI에 특화된 양자 알고리즘으로 고속 연산이 이뤄지면서 소모 전력은 슈퍼컴퓨터의 600분의 1수준이다. 기존 컴퓨터에 많은 부하를 안기는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이나 암호 해독, 교통·금융 서비스 등 최적화도 양자컴퓨터가 활약할 무대다.
백한희 IBM 퀀텀연구소 박사는 “IBM은 65큐비트 퀀텀 시스템을 IBM 퀀텀 네트워크 고객사에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100큐비트 프로세서를 활용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고전컴퓨팅만을 활용했을 때보다 큰 이점을 누리게 되는 ‘퀀텀 어드밴티지’는 1000큐비트를 달성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IBM은 2023년까지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올 만한 핵심기술이라 이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도 뜨겁다. 미국은 미·중 기술패권 경쟁 핵심기술 중 하나로 양자컴퓨터를 지목해 집중 투자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양자법’을 2018년 말 제정하고 백악관 직속 국가양자조정실(NQCO)을 신설했다. 지난해 6월 표준기술연구소(NIST) 주도로 양자경제개발연합체(QED-C)를 구성해 140여개 기업이 참여했다.

양자컴퓨터의 경우 현재 8큐비트 수준에서 2028년 100큐비트급 기술력 확보를 목표한다. 먼저 2024년까지 50큐비트급 한국형 양자컴퓨팅 시스템(KQIP)을 구축한다. 전문인력도 현재 150명 수준에서 2030년 1000명 규모로 확대하고 초중고 대상 양자 기초교육을 실시한다. 산학연 협력을 위해 삼성·LG·SK·포스코·한국전력 등이 참여한 협의체 ‘미래양자융합포럼’도 지난 7월 출범시켰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양자컴퓨팅은 이제 불가능한 기술이 아니고 한국도 집중투자할 필요성이 있어 국내 기술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며 “과기부 출연 예산까지 포함하면 올해 약 650억원이 투입됐고 내년에도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에 쏠리는 지나친 관심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분명 미래를 좌우할 가능성을 내포한 기술이지만 아직은 투자 대비 효용성이 높지 않다. 당장 성과를 위한 투자가 자칫 낭비로 비춰지며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플랫폼 기술이 보편화되지 않고 초전도, 이온트랩 등 여러 방식이 경쟁 중인 상황이라 다양한 지원책이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긴 안목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정연욱 성균관대 양자정보연구지원센터장(나노공학과 교수)은 “양자컴퓨팅 분야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10년, 20년 뒤를 기약하며 방향을 잡아야 한다”며 “최근 10여년간 급격한 기술발전이 이뤄진 점을 고려해 앞으로는 이런 흐름과 함께 자라온 젊은 전문인력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면한 전문인력 확보 문제는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며 “어린 학생들은 중첩·얽힘 등 개념을 배우기도 전에 양자컴퓨터 체험을 통해 양자역학적 특성을 스스로 익힐 수 있다. 이런 양자 네이티브가 늘어날수록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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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수학문제 푸는 순간 뚫린다… 위협받는 RSA 암호체계

양자암호를 알기 위해선 먼저 기존의 암호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데이터 송·수신 과정에선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이를 다시 복호화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해커가 개입해 민감정보를 탈취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방식을 ‘암호체계’라고 정의하고, 데이터를 암호화·복호화하는 데 사용된 값은 ‘암호키’라고 부른다.
지금까지의 암호키는 현존하는 최고성능의 컴퓨터로도 풀기 어려운 수학적 난제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소인수분해를 기반에 둔 RSA 암호체계가 대표적이다.
RSA는 큰 숫자를 소인수분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암호키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이를테면 21이라는 숫자가 어떤 두 소수의 곱으로 이뤄졌는진 수 초 내에 알아낼 수 있지만 100자리 혹은 200자리 숫자의 소인수분해는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 같은 암호체계는 해독이 오래 걸릴 뿐 불가능하지 않다는 맹점을 지녔다. 이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단시간에 계산 가능한 양자컴퓨터가 보급되자 기존 암호체계는 무력화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구글이 2019년 53큐비트 처리가 가능한 양자컴퓨터 ‘시커모어’를 선보이면서 새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대선 온라인도 가능… “양자 암호화로 절대 보안된다”

양자암호통신이 자랑하는 높은 보안성은 양자의 두 가지 특성이 뒷받침한다. 측정된 상태에서 다시 측정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비가역성’과 물리적 거리와 관계없이 서로의 상태를 공유하는 ‘얽힘’(Entanglement)이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활동이 활성화된 오늘날 통신 보안의 중요도는 매우 커졌다”며 “앞으로도 양자암호통신은 현재 기술로 극복하기 어려운 다양한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양자암호통신 시장 뛰어든 이통사



◆후발주자지만 수준은 상당… 장거리 양자전송·인증절차 확립 ‘과제’

익명을 요구한 양자암호통신연구기관 관계자는 “SK텔레콤이 미국 월가와 유럽 국가 쪽에서 시범망을 구축하고 있다”며 “월가의 경우 금융망이라는 점에서 그만큼 한국의 양자암호통신 기술 수준이 높으며 신뢰받고 있음을 반증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물론 양자암호통신이 완벽히 상용화되기까지 가야할 길은 멀다. SKT와 KT가 일부 유선 시범 서비스를 운영하는 등 초기상용화 단계에 돌입해지만 장거리 양자전송·유무선 채널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허 센터장은 “지금의 통신망은 일부 구간에만 양자암호 기술이 적용돼 데이터가 완벽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려운 상태”라며 “송·수신자 사이의 모든 통신 구간이 양자통신으로 보호되는 상황이 기술적으로 완성된다면 사용자가 선택적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보호하는 미래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암호 안정성 인증 절차 확립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양자암호 시스템이 통신망에 쓰이기 위해선 기관으로부터 이 암호가 안전하다/안전하지 않다는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국내 인증기관의 경우 안정성 인증절차가 아직 확립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강소현 기자 (kang42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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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동현 기자, 강소현 기자 kang42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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