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한가한 소리

한겨레 2021. 9. 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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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런, 홀로!?][한겨레S] 이런 홀로!?
안전한 '홀로' 살기
여성의 불안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
젠더폭력 일상화된 사회의 한 단면
안전하게 '홀로' 살아내기 위해서
위험 신호 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인프피야, 걔가 지금 문을 두드리고 있어. 난 (집에) 없는 척하려고.”

10여년 전 대학생일 때 일이다. 친구 ㄱ이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쿵 내려앉았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ㄱ의 메시지는 건조했지만, 나는 공포와 불안을 함께 느꼈다. ㄱ은 당시 1년가량 사귀었던 사람과 이별 중이었다. ‘안전이별’(연인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스토킹·폭행·감금, 사진·동영상 유포 협박 등을 당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신조어)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에도, 폭력은 존재했다.

집에서 안전하게 쉬고 싶다

메시지를 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는 ㄱ의 원룸 내부 모습이 그려졌다. ㄱ은 학교 근처 7평 남짓한 오픈형 원룸에 살았다.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 한복판이었지만, 채광은 나쁘지 않았다. ㄱ이 메시지를 보낸 순간에도 빛은 방을 환하게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ㄱ은 원룸 현관문과 그나마 가장 거리가 먼 책상 앞에서 최대한 움직임을 없애려고 숨죽인 채 몸을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얇디얇아 방음에 취약한 원룸의 현관문이 ㄱ과 선배 사이를 위태롭게 나누고 있겠지. “내가 지금 갈게.” “아니야. 괜히 화를 돋우면 어떻게 해.”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집이 한순간 감옥으로 변해버린 경험은, 친구 ㄱ만 겪은 게 아니다. 당시는 내가 친구를 집에서 꺼내주려 움직였고, 그로부터 5년 뒤에는 친구가 집에 갇힌 나를 구출하러 출동했다. 나는 친구의 집에서 며칠 머물렀고, 급하게 이사를 했다. 임대차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다음 세입자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모든 적금을 해지해서 새로운 주거지를 구하는 데 썼다. 이사한 뒤 3개월 정도, 나의 퇴근길은 ‘가능한 한 빨리 이동하기’가 아니라 ‘가능한 한 복잡하게 움직이기’에 맞춰졌다. 어느 날은 버스 정거장을 두어개 지나쳐 내렸고, 또 다른 날에는 집과 반대 방향에 있는 공원에 들러 농구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고, 가끔 집에서 200m 떨어진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아무도 나를 따라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까지 무작정 촉각을 곤두세웠다. 가끔은 억울했고, 때로 지나치게 예민한 게 아닐까 자기검열 했다. 그럴 때면 내가 바라는 걸 또렷하게 떠올렸다. ‘집에서만큼은 안전감을 느끼며 편하게 쉬고 싶다’는 바람.

시간은 어느 정도 치료제 역할을 한다. 과거의 경험은 내게 몇가지 습관―예를 들어, 주소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사진·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지 않기―을 남기고, 점차 흐릿해졌다. 그래도 안전에 대한 강박적 사고는 틈틈이 뾰족하게 레이더를 가동시킨다. 시간 덕분에 과거보다 무뎌졌다 싶을 때쯤이면 지인에게 비슷한 일이 생기거나 더 끔찍한 일을 겪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언론 기사로 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건물 안에서 남성 연인에게 맞아 숨진 피해자 여성의 뉴스를 보자마자, 어떤 해묵은 감각이 다시 생생하게 온몸을 휘감은 것처럼.

시간만 약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알고 싶었다. 왜 남성 성별로 지정받은 사람들은 상대가 ‘싫다’는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혀도 끈질기게 따라다녀야 ‘남성답다’고 인정받고, 여성들의 집단적이면서 개인적인 ‘위험 감지 센서’는 ‘지나친 예민함’으로 비하되는가. 여성 집단을 향한 일상적 폭력은 방관한 채, 여성의 목숨이 위태로운 최대 위기 상황에 닥쳐서야 뒤늦게 보호 행동에 나서는가. 늦었다고 생각할 땐 이미 늦은 건데 말이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찾아다닌 강연과 책들―대표적으로,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교양인)―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세상에 이미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로 분류된 일을 ‘문제’라고 지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말, 그래서 낯설고 어려운 말이 필요하다. 내겐 ‘젠더폭력’, ‘성별화’ 등이 그런 말 가운데 일부다.

게티이미지뱅크

예민해야 생존한다

여성들의 불안을 ‘사소화’하는 건 젠더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의 한 단면이다. 최근 김민아 <경향신문> 논설실장은 칼럼에서 “여성의 불안이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고, “안전에 대한 갈망을 유난스러운 예민함 정도로 간주”하는 일 자체가 여성 대상 범죄를 제때 제대로 막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칼럼을 읽으며 언젠가 미드 <로 앤 오더: 성범죄전담반>(Law & Order: Special Victims Unit)을 보다가, 여성 형사의 대사 한마디에 소소한 위로를 받은 기억이 났다. 성범죄로 사망한 피해자의 여동생이 언니를 죽인 범인으로 언니의 전 애인을 지목하는데, 용의자가 된 전 애인은 여동생을 “편집증 환자”로 몰아붙인다. 그 뒤 용의자의 집을 수색하는 현장에서 여동생의 편집증적 증세를 상기시키는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데, 한 여성 형사가 한마디 툭 내뱉고 지나간다. “여성들은 편집증세가 있어야 생존 가능성이 커져.”

피곤한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난해 내가 사는 공공임대아파트 단지 곳곳에 ‘주거침입으로 인한 방범 안내’ 공지문이 붙었다. “우리 아파트에 세대 주거침입 사례가 발생하였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청년 여성 1인 가구가 사는 원룸형 세대에 한 남성이 침입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청년형 거주자 오픈채팅방에 사건 내용이 일부 공유됐다. “남친(남자친구의 줄임말)일 수도 있지 않나요?”라는 메시지를 기억한다. 주거침입은 ‘범죄’라는 게 중요하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핵심은 아닐 것이다. 같은 방에 공유된 ‘용의자’ 인상착의를 보자마자 피곤함이 이중으로 몰려왔다. 하필 나랑 비슷해서…. 당시 몇달 동안 내가 입을 피해만 조심한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잠재적 가해자’로 불안감을 줄 것도 함께 고민해야 했다. 가능한 한 야밤에 야구모자를 쓰고 어슬렁거리지 않아야지. 나는 밤 산책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미국의 현직 검사이자 성범죄·스토킹 부서 팀장인 웬디 L. 패트릭이 낸 범죄심리학 책 <친밀한 범죄자>(알에이치코리아)의 에필로그 제목은 ‘늘 깨어 있는 삶’이다. 책의 원제는 ‘레드 플래그’(Red Flags)로, 지은이는 독자가 주변 관계에서 범죄에 희생되지 않을 수 있는 위험 신호를 개발해 전파한다. 그는 “위험 신호 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나 대신 깨어 있어줄 안전망은 없을까 생각했다. 현재로서는 돈을 쓰면 된다. 홈 시큐리티(보안) 시장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서다. 집 안 침입이 감지되면 신속 출동을 해주는 상품, 현관문 앞에 사람이 서성이는 걸 자동으로 감지해서 가입자 스마트폰으로 알림 및 영상을 보내주는 상품, 24시간 동안 집 안 전체를 360도로 감시하면서 사람 실루엣을 식별해주는 상품 등등등. 내 돈으로 안전비용을 내는데도 ‘지나친 예민함’으로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에서 연애·결혼을 거부하는 선택 또한 욕먹을 이유 없다.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 위험 감지 센서를 ‘풀가동’하게 한 건 이 사회니까. 온전한 ‘홀로’, 안전한 ‘홀로’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지나친 예민함’을 포기하기 어렵다.

경기도 인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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