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원의 20대 랩소디] 방송 취준생인 내가 신입사원 공채가 반갑지 않은 이유

이혜원 2021. 9. 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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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따라 방송사 공채가 계속 뜨고 있다.

난생처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쳤던 새벽, 불안한 마음으로 방송사 입사 준비를 결심했다.

신입사원 공채시험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한 고등학교로 들어갈 때, 나는 그제서야 내가 '취준생'이라는 걸 실감했다.

두세 달이 걸리는 채용 과정과 필기시험의 벽이 내겐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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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 '안' 기다리는 마음…누군가를 이기고 경쟁해야 하는 마음이 무거워

[미디어오늘 이혜원]

요즘 따라 방송사 공채가 계속 뜨고 있다. 참 모순적이지만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헉 또 떴네' 나는 공채가 뜨길 바라지만 격렬하게 뜨지 않길 바란다. 무슨 X소리인가 싶을 거다.

대학교 4학년, 그러나 두 번째 대학이라 스물일곱이나 먹어버린 나는 새해부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늦으면 입사 적령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나이로 27살이 넘으면 나중에 족보가 꼬일 수도 있다느니, 회사가 선호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들을 떠올렸다. 난생처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쳤던 새벽, 불안한 마음으로 방송사 입사 준비를 결심했다.

첫 공채 시험을 보기로 하고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던 2주가량. 살면서 수도 없이 자소서를 써봤지만 입사라고 하니 괜히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유튜브에 떠도는 이른바 '자기소개서학개론'을 보면 볼수록 자기소개서에도 정답이 있는 건가 싶었다. 이럴 때 쓰는 단어. '적당히'. 그러니까, 적당히 깨알같이 나를 어필하면서도 적당한 선에서 논리정연하게 나의 이야기를 펼치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내내,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입사를 원하는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흔히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야, 대학교에서 나 뽑아주면 나 거기 잔디밭 잡초 내가 다 뽑을 거야.” “야, 난 화장실 청소할 거야 왜 이래.” 이렇게 서로의 간절함을 나누면서 깔깔깔 웃다가 이내 정적이 맴도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벌써부터 방송국 구내식당을 검색하면서 아침밥을 먹는 상상부터, 사원증 꼭 매고 내 자리에서 열심히 고뇌하는 나를 그렸다. 피곤에 찌들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단꿈을 꾸길 며칠 밤. 다행히 서류 합격을 했다. 그러나 필기시험을 보러 가기 전, 나는 매일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공부를 했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 언젠가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시험 보러 가기 전에 설레면 되고 떨리면 안 된다고 하셨던 말씀을 떠올렸다. 그래서 있는 힘껏 주문했다. '나는 지금 설렌다. 너무 설레서 이러는 거다.'

▲ 사진=gettyimagesbank

신입사원 공채시험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한 고등학교로 들어갈 때, 나는 그제서야 내가 '취준생'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힐끔힐끔 보면서, '저 사람이 내 경쟁자 구나'라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학교 선생님께서 SNS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지금 청년들은 수직적 피해자, 수평적 가해자를 경험한다.'

떨어졌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필기시험 합격 발표가 나오는 열흘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 그저 내가 써 내려간 답안지에 내가 쓴 말도 안 되는 글자들만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 '이렇게 쓸 걸' 후회했다. 갑자기 '사주팔자'를 보고, 강릉으로 훌쩍 떠나질 않나.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듣고 넷플릭스를 봐도 멍 했다. 머리를 감싸며 포효를 해봐도, 야속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는 그 이후로 아주 조금씩, 그러니까 무겁고 부담스러운 마음의 짐을 1g씩 내려놓으면서 공채에 뛰어들었다. 지난번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또 다음엔 그 지난번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다고 대충 쓴다는 게 아니다. 이것이 내 종착지가 아니어도 나는 충분히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 내가 당장 합격하지 못해도 꾸준히 도전하리라는 결심들. 공채가 뜨면 오히려 반갑고 좋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 그러나 여전히 나는 공채를 반가워할 수만은 없었다. 아쉽게도 설렘보다는 일상을 뒤흔드는 긴장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두세 달이 걸리는 채용 과정과 필기시험의 벽이 내겐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부족하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때문이 아니다. 또 경쟁을 시작하는 마음이 그리 가벼울 수가 없다. 나는 정말이지, 경쟁해야 하는 마음이 늘 무겁다.

수많은 경쟁을 치르고 목표하던 바를 이룬 친구들이 곁에 있는 덕분에, 많은 조언을 듣는다. 의외로 친구들은 내게 '죽어라 해야지' '네가 지금 이거 할 때야?'라고 핀잔하지 않는다. 떨리고 무섭다고 연락하면 친구들은 그저, 많이 산책하고 좋은 생각을 하라고 말했다. '진짜? 나 산책해도 돼? 이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봐야 되는 거 아니야?' 물으면 그러지 말란다. 덕분에, 나는 틈나는 대로 걸으려고 하고(요즘은 너무 덥지만…) 가성비와 효율보다는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그래서 언론사에 글도 실어 보고 만들어보고 싶었던 뮤지컬 영화도, 작사도 하며 바쁜 한 학기를 보냈다.

▲ 일러스트=gettyimagesbank

하루에도 몇 번씩 인크루트나 독취사에서 '★★신입 채용을 기다리고 있는 이혜원 님께★★'라는 메일이 온다. 오늘도 새로운 공채가 떴다. 기다리던 공채다. 그런데 아무래도 취준생의 자세가 되지 않은 건지, 썩 반갑지만은 않다. 서둘러 자기소개 영상을 제출해야 한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매번 낯선 채용 과정에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무언가 되고 난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즐겁지 않은 것이. 나를 더 어지럽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난,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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