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세계사의 절반' 유목 문명사 [책과 삶]

김경학 기자 2021. 9. 3. 21: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인문학자 공원국의 유목문명기행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296쪽 | 1만6000원

‘유목’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광활한 초원·말·몽골 정도. 이 정도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대륙의 가장자리 한반도 절반 아래에 사는 정주민의 입장에선 침략·야만 등 부정적 단어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유목문명’이라니. ‘유목’과 붙은 ‘문명’이란 단어가 생경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긴다.

저자는 “세계사의 절반”에 해당하는 유목사회의 역사, 다시 말해 대안적 세계사를 집필하기 위해 유라시아 초원 지대를 직접 다니는 이로 ‘초원의 인문학자’라 불린다. 역사서이자 기행문인 책에는 유목문명의 이야기를 찾아 박물관부터 유목민 텐트까지 2년여간 세계 곳곳을 두 발, 심지어 말도 타고 누빈 저자의 흔적이 담겨 있다. 선사시대 여신신앙을 다룬 서기전 3500년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한 권에 담았다. 방대한 내용을 다루지만 지루한 문체가 아닌 생동감 있는 이야기꾼의 언어로 전한다.

저자는 유목문명과 정주문명이 충돌하고 서로 얽히고설켜 상호작용한 결과 현재에 이르렀다고 강조한다. 정주문명 중심의 세계에서 타자로 소홀히 취급받던 유목문명 이야기는 신선하면서 충격적이다. 특히 성 역할 측면에서 유목문명이 정주문명보다 훨씬 평등했다며 기존 연구에 반론을 제기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유목문명을 옹호하지만, 그렇다고 이상화하지는 않는다.

인류의 이기심으로 점점 지구가 뜨거워지고 망가지는 현 시대, 저자는 ‘자유·공유·환대’라는 가치로 체제를 유지해온 유목문명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인간은 공유가 자연의 방식임을 명백히 깨닫고 있다” “공유의 가능성을 회의하며 행동하지 않는 사이, 우리는 공멸이라는 마지막 공유의 장으로 끌려가게 될지 모른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