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금이 새고 있다]③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한 공무원들

박진영 2021. 9.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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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세금 1조 원이 검증없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 막대한 세금이 어떻게 낭비되고 있는지, KBS가 연속해서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입니다.


■ 공무원들의 수상한 토지 매입

공무원이 맹지를 샀다.→ 1년 뒤, 땅에 도로가 생겼다. → 땅 호가가 두 배 가까이 오른다.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이건 우연한 일일까요? 계획된 일일까요?

청도군 범곡리의 한 야산. 지난 2016년, 청도군 공무원 네 명이 이곳의 땅 4천여 제곱미터를 매입했습니다. 토지 가격은 제곱미터당 약 40만 원, 총 4억 원 정도였습니다.

매입 당시 이 토지는 도로와 연결되지 않은 맹지였습니다. 그런데 1년 뒤, 이곳에 갑자기 도로가 건설됩니다. 알고 보니 이들 공무원이 해당 마을의 주민인 척, 농산물 수송도로가 필요하다며 '주민숙원사업'을 신청한 겁니다.

마을 야산을 가로지르며 난 도로, 공무원 네 명이 주민숙원사업을 신청해 건설됐다.


청도군은 사업 예산을 집행하면서, 토지 주인이 공무원인지 아닌지, 또 실제 농사를 지으려는지 아닌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앞선 기사에서 말씀드렸듯이 주민숙원사업은 대부분 검증을 안 합니다.

청도군 관계자

"공무원들이 맹지를 먼저 사고 나서, 주민숙원사업을 신청했죠.
주민숙원사업 신청이 들어오면 저희는 무조건 해드리거든요."

맹지에 도로가 나면서 이 땅의 호가는 두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정말 농사지으려고 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국 땅을 팔려다 경찰에 덜미가 잡혀 구속됐습니다.

공무원들이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했다는얘기가 됩니다. 마을 주민을 위해 써야 할 주민숙원사업 예산이 공무원들의 땅값을 올려주는 데 이용된 겁니다.

■ LH 투기보다 돈 벌기 더 쉽다!

이번 투기 수법으로 어떤 공무원들은 LH 투기보다 더 간단히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LH 사례 등 일반적인 투기 수법은 신도시 개발, 철도 계획 등 '미공개 토지 개발계획'을 소수의 인원이 미리 입수해 개발계획에 편승한 겁니다. 일단 미공개 토지 개발계획을 알아야 하는데, 쉽지 않죠.

소수의 관계자가 미공개 개발 정보를 취득해 토지를 매입하는 투기 방식.


그런데 주민숙원사업 투기는 그냥 아무 땅이나 사도 됩니다. 아무 땅이나 산 뒤, 그 마을 주민인 척 '농사짓게 도로를 내주세요', '경운기 지나가게 도로 좀 넓혀주세요.' 하고 주민숙원사업 신청하면 되거든요.

공무원이 아무 땅이나 산 뒤 ‘주민숙원사업’을 이용하는 투기 방식


공무원들이 주민숙원사업의 허점을 악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건데, 이러한 적발이 공개된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나 주민숙원사업은 수십 년 전부터 이뤄졌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투기를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 주민숙원사업 예산은 지방의원 쌈짓돈?

최근 구미시 A 의원과 경북도의회 B 의원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지자 땅'에 하천 정비공사를 해달라며 주민숙원사업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A 의원, B 의원이 이 예산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거죠. 계획대로 하천 정비 공사가 진행됐다면, 이번에도 지가 상승이 이뤄졌을 겁니다.

구미시 C의원 역시, 최근 지지자 땅 주변 도로를 3미터에서 6미터로 확장시키려다 발각됐습니다. 3 미터 도로에선 주택만 지을 수 있는데, 6미터로 확장하면 전원주택 단지를 지을 수 있게 됩니다. 두 사례 모두 별도의 검증 과정이 없었던 탓에 벌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북 구미시의 공터. 지방의원들이 세금으로 지지자 소유 땅에 하천 정비 공사 해주려다 경찰에 적발


현재 지방의원들은 주민숙원사업 명목으로 매년 일정규모 이상의 재량사업비를 받고 있는데, 이 예산은 거의 의원 맘대로 쓰여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지방의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예산이 지급되는지, 이 돈이 어디에 쓰여졌는지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시가 안된다는 뜻입니다.

조근래/ 구미 경실련 사무국장

"시의원 선거 운동을 도와준 사람들의 개별 민원입니다.
지지자들의 민원을 위해서 예산을 쓴다는 건 도둑질을 한 거죠"

■ 당신 세금이 공무원 투기 자금으로 쓰인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예산 감시 전문가들에게 문의해봤습니다.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LH 투기보다 더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창수/나라살림연구소 소장

"LH 직원들은 이미 만들어진 개발 계획이 있고, 그 계획 위에 편승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 공무원들은 자기들이 계획을 만들었잖아요.
LH는 편승한 거고, 이거는 자기들이 계획했기 때문에 죄질이 훨씬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LH 투기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며 전수 조사를 제안했다.


범죄에 가담한 정도가 아니라 범죄를 기획했기 때문에 더 죄질이 나쁠 수 있다는 얘기인데요, 무엇보다 국민의 세금이 소수의 사익을 위한 부동산 투기에 활용됐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승수/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공적인 예산을 동원해서 공무원들 지가를 상승시킨 거지 않습니까.
자치단체 예산이 공직자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는 거죠."

■ '세금 도둑 잡아라!'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례가 청도군에서만 벌어지지 않았다면서, 전국 지자체의 주민숙원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주민숙원사업이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나 감사원이나 공무원과 관련한 주민숙원사업에 대해 전면적으로 조사를 해야 합니다."

4편에서는 그동안 주민숙원사업이 '왜'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분석해봅니다.

박진영 기자 (jy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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