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ㅣ이병 정해인, 잘 못들었습니다! ③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1. 9. 1. 15:5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사진제공=넷플릭스

"잘 못들었습니다?"

넷플릭스 'D.P.' 속 안준호의 물음은 배우 정해인의 물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준호는 정해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가장 변화가 큰 캐릭터다. 그는 꿈도 희망도 없이 배달 알바를 전전하고, 손님과 배달집 사장에게 도둑으로 몰려 억울하게 욕을 먹고 달아난 군대에서까지 선임에게 "거지새끼"로 불릴 만큼 연일 굴욕과 시련도 겪는다. 다른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과 비교하자면 심각하게 결핍된 인물이다. 그가 늘 걸치고 다니는 후줄근한 사복과 이름이 새겨진 팬티, 변화가 크게 없는 상실의 표정도 폼 나는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그렇다할 스펙도 돈도 없다. 준호에게 있는 거라곤 과거 복서 생활을 하며 다진 남들보다 조금 특출난 싸움 실력뿐이다.

드라마 '밥 잘사주는 예쁜누나' '봄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등 판타지 같던 로맨티시스트들을 곧잘 연기해왔던 정해인은 이전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로 준호를 현실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비현실적으로 잘생겼던 외모를 군복과 까까머리로 감춘 덕도 있다. 전형적이지 않은 남주의 초라한 조건과 리얼리즘 가득한 군대 이야기, 이 조건에 완벽한 입력값을 부여한 듯 정해인은 그간 보여주지 않던 생경한 얼굴로 준호를 땅 위에 발 붙인 인물로 만들었다. 이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배우로서의 성공"이라고 밝힌 과거(2016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보여준 연기론과도 맞닿아 있다. 연기를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 아닌, 연기자로서의 가치 실현을 위한 열정의 목적으로 품는다. 적어도 'D.P.'에선 그렇다. 'D.P.'가 흥행해도 준호가 '밥 잘사주는 예쁜누나'의 준희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할 거라는 걸 알만큼 똑똑한 배우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열정의 몫으로 서른 넷 나이에 "충성"을 외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정해인이 'D.P.'에서 연기한 준호는 남다른 눈썰미와 권투를 했던 독특한 이력으로 D.P.(군무 이탈 체포조)로 차출된 인물이다. 답 없는 현실로부터 도망치듯 군대에 입대했고, 도망쳐 온 군대에서마저 선임에게 모진 갈굼을 당하며 질척이는 삶의 굴레에 정색한다. 흙길이 싫어 옆길로 샜더니 똥길을 만난 준호의 척박한 인생에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자신의 양말색을 단번에 맞춘 준호의 눈썰미를 높게 산 군무 이탈 담당관 박범구(김성균) 덕에 임시 D.P.가 된 것이다. 극에서 "꿀 빤다"고 표현되는 D.P.는 소위 '있는 집 자식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층의 자리다. 첫 D.P. 임무를 함께 수행한 박성우(고경표)도 구청장 아들이다. D.P.는 준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출세이자, 공평하지 못했던 삶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기회인 셈이다. 

'없는 자'가 마주한 첫 기회는 비로소 생기 없던 눈동자에 삶의 의욕을 불어넣는다. 대타로 나간 첫 D.P. 임무에서 탈영병 잡는 일보다 술먹고 놀기 바쁜 선임에 숙취해소제까지 사다 바치며 내내 맞춰주다가, 그들의 늑장에 탈영병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오자 선임에게 울분의 주먹을 날리는 것에서부터 그 의욕은 시작된다. 내내 무표정하던 준호는 감정이 없는 사내가 아닌 감정을 삭히고 살아온 사내였음을, 그리고 기회가 없었을 뿐 영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었음이 D.P.가 되고나서야 천천히 증명된다. 이후 정식 D.P.가 되면서 다양한 탈영병을 마주하고 여러 인물의 인생사에 함께 녹아들며 준호는 더욱 성장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한준희 감독은 "우리 주위에 있을 것 같은 보편적인 청년의 면모를 명쾌하게 보여줄 것"이라며 준호를 연기한 정해인을 평했다. '멜로 장인'에서 '보통의 청년'이 된 정해인은 눈빛의 온도만으로 판타지를 지우고 현실로 자리를 옮겨왔다. 자꾸만 보고싶던 정해인의 부드러운 눈빛은 준호의 밑바닥 인생과 만나며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실연의 눈빛으로 단숨에 변화했다. 특히 탈영병들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고 그들을 쫓는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준호의 서사를 세밀한 표정 변화와 말투로 설득력 있게 형상화한다. 긴장과 경직이 가득했던 "잘 못들었습니다?"라는 단골 대사를 "잘 못들었습니다~"라며 물음표에서 물결로 점차 뉘앙스를 변화 시킨 것처럼 말이다. 

정해인은 "이 안에 너 있다"(파리의 연인)나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도깨비) 등과 같이 명대사나 명장면으로 인기를 얻은 배우는 아니지만, 강건한 눈빛과 미묘한 떨림이 담긴 섬세한 감정 연기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배우다. 그리고 'D.P.' 속 준호는 이러한 그만의 배우로서의 힘을 증폭시켜주는 기폭제 같은 배역이다. 준호로 인해 CF는 못 찍어도,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향해 한발 더 다가간 것은 확실하다.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