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승소에 바빠진 금융권.. 하나은행부터 금융당국·은행·증권사 눈치 싸움 치열
판결문 "잘못은 있으나 법조문 미비로 제재 수위 과해"
금감원, 법리검토 착수.. 추석 전 '항소' 여부 결정할 듯
재판 진행 중 하나은행, 곤두선 촉각.. 지켜보는 증권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한 중징계 취소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의 대응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다. 당장 업계 관심은 다음주로 재판이 잡혀 있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쏠려 있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판매 과정에서 최고경영자(CEO) 중징계를 받은 다른 회사들과 항소 여부를 고민하는 금융당국도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분위기다.
이번 중징계 취소 판결은 금융사 지배구조법령의 ‘법조문’이 징계에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 우리은행과 그 경영진의 잘못이 없다는 것을 뜻한 게 아니다. 재판부는 우리은행의 내부통제제도가 형식적으로만 존재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금융사 이익에 맞게 왜곡·조작됐으며, 경영진의 탐욕이 문제가 됐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판단은 여타 금융사들과 금감원의 후속 대응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3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의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우리은행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상품 선정 절차에서 있었던 투표 결과 조작, 투표지 위조, 형식적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등 내부통제 규범과 기준을 위반한 실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 “잘못은 있지만, 제재 수위가 지나치다”
재판부는 “DLF를 포함해 원래 상품선정위원회의 표결대로라면 부결됐어야 할 상품이 출시되기에 이르는 등 위원회가 사실상 자산관리(WM) 추진부 의사에 지배돼 유명무실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은 경영진으로서도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내부통제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며 그 대상이 CEO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 손태승은 내부통제기준 작성업무에 대하여도 감독자 지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대표이사의 책임에 대해서 분명히 밝혔다.
재판부가 우리은행의 부적절한 상품 선정 절차나 경영진의 책임 등을 인정하면서도 ‘징계 취소’를 주문한 것은 현행 법조문이 징계에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현행 금융사 지배구조법령 아래에서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으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해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제재 필요성만으로는 법적 근거 없이, 혹은 제재처분의 근거법령을 문언의 범위를 벗어나 확장 해석해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EO에 대한 중징계 재량권과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의 중요성에 대해 인정된 점은 금감원 입장에선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패소하긴 했지만, 제재와 관련해 일부 정당성이 받아들여진 셈이기 때문이다.

◇ ‘항소’ 고심하는 금융당국… 유사 재판 앞둔 하나은행 긴장
금감원 법무실은 이날 1심 판결문을 입수해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 추석 전까지는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항소를 시작으로 해당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손 회장에 대한 ‘재검사’나 ‘재제재’ 정도가 추가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경징계로 제재 수위를 낮추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당장 함 부회장 판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함 부회장(전 하나은행장)도 DLF 징계와 관련해 금감원과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음달 6일 3차 변론기일이 잡혀 있다.
하나은행에 대한 당시 금감원의 제재안을 보면 “DLF 신상품 대부분(753개 펀드 중 651개, 86.5%)이 사전심의가 누락된 채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공급됐고, 펀드 불완전판매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 양매도 상장지수증권(ETN) 신탁상품 검사 시 지적에도 불완전판매가 지속적으로 추가 발생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등 내용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사항이 지적됐다.
함 부회장의 경우에도 손 회장 때와 동일한 논리로 내부통제 규범·기준을 위반한 사항은 문제 삼으면서도, 법조문 미비를 사유로 비슷한 선고 결과가 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일각에서 나온다.
두 금융사에는 기관을 상대로 한 과태료 처분 취소소송도 남아 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사모집합투자증권 투자 중개업 신규 업무’ 6개월 정지와 함께 각각 197억1000만원, 167억8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은 약식재판 형식이어서 따로 변론기일은 없고 서면심리만으로 향후 법원의 결정을 통보받는 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판결 결과를 비롯해 소비자 보호·배상 조치 등 사후관리가 종합적으로 검토돼 감경 혹은 유지 등 형태의 결과가 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증권가 “일단 지켜볼 것”… 줄소송 가능성도 있어
현재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처럼 내부통제 미비를 이유로 최종 제재를 기다리고 있는 증권업계 CEO도 다수다.
라임 펀드를 판매한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나재철 전 대신증권 사장(이상 직무정지), 박정림 KB증권 대표,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이상 문책경고)과 옵티머스 펀드와 관련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문책경고)의 대응도 관심의 대상이다.
증권사들은 소송 여부에 대해 언급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으로부터 징계를 통보받은 후 1년 가까이 금융위원회 의결이 나지 않아 징계 수위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금융위 최종 의결을 지켜본 후에야 소송 여부를 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위 최종 의결이 나기 전까지는 금융위 소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금융위에서 징계 수위가 최종 확정돼야 각 증권사도 수위에 맞춰 손태승 회장처럼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금융위에서 징계 수위가 감경되지 않으면 ‘줄소송’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짙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내부 통제 부실에 대한 책임으로 경영진까지 제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판결이 나온 만큼, 금융위 최종 의결에서 징계 수위가 감경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만약 금융위에서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각 CEO와 회사 입장에서는 소송에 나서는 게 당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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