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배 당기니 10배 재미, 이것이 '오글'

박돈규 기자 2021. 8. 3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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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오페라글라스'
지난 26일 뮤지컬 '사랑했어요'(서울 광림아트센터) 공연을 앞두고 관객 신예송(왼쪽)씨와 이승민씨가 오페라글라스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신씨는 배우 고유진을, 이씨는 배우 박규리를 집중적으로 보겠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뮤지컬 공연장에 가면 ‘나’를 볼 수 있다. 1000석 넘는 대극장에선 나를 빌리겠다며 긴 줄이 생긴다. 공연을 보는 내내 관객은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무게는 약 150g. 표면에 ‘10x25’ 같은 숫자가 적혀 있다. 나는 무엇일까?

오페라글라스(opera glasses). 이름은 태생을 짐작하게 하지만 요즘엔 오페라보다 뮤지컬이나 발레와 더 친하다. 특히 뮤덕(뮤지컬 덕후)은 공연장에 갈 때마다 이 작은 쌍안경을 챙긴다. 예매하기 어려운 스타들이 무대에 오르면 관객은 일제히 오페라글라스를 눈으로 가져간다. 3층 꼭대기에 앉아도 배우가 흘리는 또르륵 눈물 한 방울까지 감상할 수 있다.

오페라글라스. 1층 VIP석을 예매해도 10~15열 뒤에 앉으면 배우 얼굴이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오페라글라스를 사용한다.

◇신세계를 보았다

지난 26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비처럼 음악처럼‘ ‘비 오는 날 수채화‘ 등 가수 김현식의 노래로 속을 채운 뮤지컬 ‘사랑했어요’를 보러 온 관객 신예송(여·20)씨는 “10x25라는 숫자는 배율과 렌즈 구경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10x25는 10배율로 100m 떨어진 피사체를 10m 앞으로 당겨오며 렌즈 지름이 25㎜라는 뜻이다. 10배율이면 뮤지컬을 보기에 충분하고 20배율은 대형 콘서트를 보러 가는 관객이 선택한다. 배율이 커질수록 렌즈가 커지며 무거워진다. 신씨는 “저렴한 2~3층 객석에서 감상하려면 오페라글라스는 필수품”이라며 “표정 연기와 섬세한 몸짓, 소품의 디테일까지 보인다”고 했다.

‘오글(오페라글라스)’ 예찬론자에게 첫 경험은 개안(開眼·눈을 뜸)이다. “10배 당겨서 보니 10배 더 재밌다”는 리뷰가 넘친다. 이승민(남·21)씨도 오글을 영접한 날을 잊지 못한다. “예술의전당 2층 객석에서 뮤지컬 ‘웃는 남자’를 관람한 날이었어요. 육안으로 볼 때는 박강현 배우 얼굴이 빨갛게 입만 찢어놓은 것 같았는데, 오페라글라스로 분장을 목격하자 탄성이 나왔어요. 울면서 웃고 있더라고요. 이래서 ‘오글’ ‘오글’ 하는구나. 말 그대로 신세계였습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글라스. 작년 초 코로나 사태 이후 대여가 중단된 상태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글라스의 장단점

천체를 관측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나 대서양을 건너던 항해사는 망원경이 훗날 이런 시장을 만날 줄은 몰랐다. 오글은 성능에 따라 가격이 다양한데 싼 제품은 8000원이다. 대여료는 3000~5000원 수준.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홍보하는 고윤희씨는 “조승우·김준수 등 특급 스타가 출연하는 뮤지컬 회차는 관객의 30~40%가 오글을 사용한다”며 “오글(선착순 100여 개)을 빌리려면 한 시간 일찍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아예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뮤지컬 시장은 같은 공연을 보고 또 보는 ‘회전문 관객’이 지탱하고 있다. 처음에는 맨눈으로, 두 번째부터는 오글을 사용한다. 전체는 이미 봤으니 부분에 집중하는 셈이다. 한 관객은 “공연의 흐름을 보고 싶다면 (시야가 좁아지는 오글은) 비추천, 배우의 표정 연기나 소품 등을 자세히 보고 싶다면 오글을 추천한다”는 후기를 남겼다. 맨눈과 오글을 왔다 갔다 하면 어지러울 수도 있다.

광림아트센터에서는 7층 물품보관소에서 오페라글라스(총 30대)를 빌려준다. 예술의전당, 블루스퀘어 등 몇몇 공연장은 코로나 사태로 현재 오글 대여를 중단했다. 샤롯데씨어터는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 중이고 세종문화회관에는 오글 자판기가 있다. 사용 후 소독 등 철저히 관리한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은 코로나 거리 두기 단계가 완화되면 오글 대여 서비스를 재개할 방침이다. 신예송씨는 “스마트 줄서기 시스템을 도입하면 더 좋겠다”고 했다.

세종문화회관에는 이런 오페라글라스 자판기가 있다.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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