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우리 할머니는 ‘해녀왕’
회전 초밥 집, 갸름하게 뭉쳐진 밥에 ‘성게 알’이 얹힌 접시가 번쩍거리며 다가온다. 성게 알 초밥 한 접시 값이면 광어 초밥을 세 접시는 먹을 수 있다. 3초간 엄청 고민하다 올라가던 손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할머니 살아 계셨을 땐 성게 알을 밥처럼 퍼먹었는데!’ 옛 생각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는다. 할머니는 제주 바다를 주름잡던 ‘해녀왕’이었다.

열여섯에 아기 해녀로 물질을 시작한 할머니는 70여 년을 제주 해녀로 살았다. 물질 기량이 뛰어난 해녀를 대상군(大上軍)이라 불렀는데, 할머니는 대상군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제주 바다는 물론 배 타고 육지 물질도 다니며 진귀한 해산물을 많이 잡았다.
물질은 삼국사기에도 기록된 오래된 바다 일이다. 깊은 바다에 몸을 던져 강한 수압을 견디고 숨을 참으며 작업해야 하는 말할 수 없이 고된 일이기도 하다. 물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도 기억나는 할머니 말씀이 있다. “바당(바다)에서 나오민 배고팡 입에 밥을 물고 있어도 그걸 씹지 못헐 정도로 고됐었주.”
제주 해녀는 물때가 좋은 1년의 반만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질을 쉴 때는 밭을 일궈 마늘과 감자, 깨 농사를 지었다. 그 시절 제주 여인들이 다 그랬다. 전후(戰後) 세대, 마을 곳곳에는 아버지 잃은 자식이 많았다. 척박한 제주 환경,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어머니만 바라보던 시절.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었기에 어머니들은 더 억세고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따고, 돌투성이 땅을 일구며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쳤다.
어릴 적엔 할머니는 그저 억세고 고집스럽기만 한 분이라 생각했다. 할머니가 물질해 보내주시는 그 많은 성게 알을 그저 받아먹기만 했다.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뭉툭한 손가락을 잡아드린 적이 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 내 작은 손을 포개고 싶다. 당신의 고된 시절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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