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우리 할머니는 ‘해녀왕’

김민희, 요리강사·'푸른 바당과 초록의 우영팟’ 저자 2021. 8. 3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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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 초밥 집, 갸름하게 뭉쳐진 밥에 ‘성게 알’이 얹힌 접시가 번쩍거리며 다가온다. 성게 알 초밥 한 접시 값이면 광어 초밥을 세 접시는 먹을 수 있다. 3초간 엄청 고민하다 올라가던 손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할머니 살아 계셨을 땐 성게 알을 밥처럼 퍼먹었는데!’ 옛 생각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는다. 할머니는 제주 바다를 주름잡던 ‘해녀왕’이었다.

일러스트=김도원

열여섯에 아기 해녀로 물질을 시작한 할머니는 70여 년을 제주 해녀로 살았다. 물질 기량이 뛰어난 해녀를 대상군(大上軍)이라 불렀는데, 할머니는 대상군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제주 바다는 물론 배 타고 육지 물질도 다니며 진귀한 해산물을 많이 잡았다.

물질은 삼국사기에도 기록된 오래된 바다 일이다. 깊은 바다에 몸을 던져 강한 수압을 견디고 숨을 참으며 작업해야 하는 말할 수 없이 고된 일이기도 하다. 물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도 기억나는 할머니 말씀이 있다. “바당(바다)에서 나오민 배고팡 입에 밥을 물고 있어도 그걸 씹지 못헐 정도로 고됐었주.”

제주 해녀는 물때가 좋은 1년의 반만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질을 쉴 때는 밭을 일궈 마늘과 감자, 깨 농사를 지었다. 그 시절 제주 여인들이 다 그랬다. 전후(戰後) 세대, 마을 곳곳에는 아버지 잃은 자식이 많았다. 척박한 제주 환경,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어머니만 바라보던 시절.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었기에 어머니들은 더 억세고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따고, 돌투성이 땅을 일구며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쳤다.

어릴 적엔 할머니는 그저 억세고 고집스럽기만 한 분이라 생각했다. 할머니가 물질해 보내주시는 그 많은 성게 알을 그저 받아먹기만 했다.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뭉툭한 손가락을 잡아드린 적이 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 내 작은 손을 포개고 싶다. 당신의 고된 시절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김민희, 요리 강사·‘푸른 바당과 초록의 우영팟’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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