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곡선은 'U'자형, 바닥 찍고 50세부터 올라간다

양지호 기자 2021. 8.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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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

조너선 라우시 지음|김고명 옮김|부키|432쪽|1만8000원

행복지수를 그래프로 그리면 스마일 이모티콘의 웃는 입가와 같은 모양이 된다. 10·20대에 행복했다가 40~50대에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간다. 정말일까. 수십 개 국가의 행복도 통계를 분석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 출신 저자는 그렇다고 한다. 그는 심리학·경제학·뇌과학을 아우르며 생애 연구와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행복곡선은 알파벳 ‘U’ 형태라고 주장한다.

세계적 여론조사 기관 ‘갤럽 월드 폴’이 2010∼2012년 소득·학력·취업 같은 변수를 통제하고 ‘인생 만족도’와 ‘나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더니 미국·영국·독일·중국·라틴아메리카 등 여러 지역에서 ‘U’자형 행복 곡선이 나타났다. 같은 기관이 46국의 데이터를 분석한 2005∼2014년 조사에서도 두 나라를 빼고는 동일한 추세가 나왔다. 국가별로 경제규모와 인종이 다르고, 국가 안에서도 성별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곡선 자체는 유사하게 발견됐다고 저자는 짚어낸다. 행복의 핵심 변수 중 하나가 ‘나이 듦’이며 중년을 견디고 나면 다시 행복이 찾아온다는 경향성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왜 유독 중년은 힘들까. 저자는 이를 ‘예측 오차’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독일 경제학자 하네스 슈반트가 15년간 같은 인물들을 대상으로 ‘5년 후 삶의 만족도 기대치’와 5년 뒤 실제 만족도를 비교한 조사를 인용한다. 대다수 응답자는 20~40대까지 기대치가 실제 만족도보다 높았다. 50대 중반부터 만족도는 기대치를 웃돈다. 기대보다 더 만족하니 행복은 늘어난다.

중년에 찾아오는 불행의 골짜기에 빠졌어도 이를 벗어나면 50대 이후 행복지수는 올라간다. 저자는 40국 이상에서 ‘나이 듦’이 행복에 기여한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50대가 되기 전까지는 그 낙차가 불행을 키운다. 기대보다 못한 현실이 불만을 키우고, 그 불만이 실망과 후회를 키우는 부정적인 피드백 효과가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낙관 편향은 40세에 절정에 달했다가 서서히 줄어든다는 것이 저자의 관찰이다. 그는 “청춘에는 낙관론으로 무장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한계에 도전하고, 중년에는 정신의 눈금을 재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골짜기를 벗어나면 ‘뜻밖의’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중년의 위기’란 반등을 준비하는 전환기일 따름이다.”

영장류 연구는 이런 변화가 일종의 신체 안에 내장된 생체 시계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인간과 DNA 구조가 유사한 오랑우탄 172마리와 침팬지 336마리를 분석한 결과 인간의 45∼50세에 해당하는 시기에 ‘안녕감’이 최저점을 찍었다는 연구를 인용한다. 영장류의 행복 곡선도 ‘U’자 형태였다는 것이다. “인생 만족도가 40대에 최저점을 찍고 나이 들수록, 특히 50 이후부터 반등하는 것이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그는 50대 이후 본격적인 노년에 진입하기 전까지 커리어와 사회생활에서 ‘앙코르’ 시기가 찾아온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55~64세 창업률이 젊은 층보다 높다. 저자는 “신체 건강은 저하되는데 정서는 건강해지는 ‘나이 듦의 역설’도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다”며 “나이가 들면서 짜증에 휘둘려 하루를 망치려는 경향성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현대 의학 덕분에 수명이 연장되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인생의 시기가 10~20년 연장되는 과정에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 새로운 단계를 ‘앙코르 성인기’라고 부른다.”

한국은 어떨까. 책에는 없지만,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의 2018년 조사에서는 저자가 주장하는 ‘U’자 행복곡선이 나타났다. 그러나 대다수의 설문과 연구에서 한국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불행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 사회에는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통계적 경향성과 영장류 연구 같은 근거가 ‘정황증거’ 같아서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내면의 비판자를 차단하라’ ‘현재에 집중하라’ ‘뛰지 말고 걸어라’ 등의 조언도 다소 뻔한 느낌이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인류 대다수는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도(워런 버핏처럼 50세 이후 부의 99%를 일구는 일은 없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그러니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은어)’는 투자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30~40대여 ‘존버’ 하라. 버티면 다시 행복해질 터이니. 원제 The Happiness Curve(행복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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