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연합’ 교토국제고, 고시엔 기적의 4강

도쿄/최은경 특파원 2021. 8. 27.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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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어 여름 대회서도 돌풍… 9회 역전타로 창단 첫 준결행
‘고시엔 4강 축하’ 써붙인 택시, 교토 시내에 많이 돌아다녀
교장 “한일관계 개선 계기 되길”

26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또다시 한국어 교가가 울려퍼졌다. 8월 들어 벌써 네 번째다. 외국계 학교 최초로 아사히 신문이 주최하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에 진출한 한국계 교토국제고가 파죽의 3연승을 거두고 4강에 진출한 덕분이다. 고시엔은 첫 경기 중간과 승리할 때 해당 학교 교가가 방송되는데, 이 모든 게 NHK를 통해 중계된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되는 이 학교 교가는 이제 일본 전역에 알려지고 있다.

재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26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103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승리한 뒤 서로를 껴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이날 교토국제고는 후쿠이현의 쓰루가케히고를 3대2로 꺾고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교도 연합뉴스

교토국제고가 2년 만에 열린 제103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 진출한 데 이어 여름 고시엔에서 ‘4강 진출’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날 교토국제고는 고시엔에 3년 연속 출전 중인 후쿠이현의 쓰루가케히(敦賀気比)고를 3대2로 꺾고 준우승전 진출을 확정했다. 고시엔에 첫 선발 출전한 히라노 쥰타가 5회까지 상대를 무득점으로 묶어주고, 9번 타자 마쓰시타 게이토가 8회와 9회 결정적인 안타를 날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고시엔은 전국 4000여 개 고교 야구팀이 경쟁하는 일본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다. 봄에는 마이니치신문, 여름에는 아사히신문이 주최해서 두 차례 열리는데 일본인들은 여름 고시엔을 으뜸으로 친다. 봄 고시엔은 경기 성적 외에도 다양한 면을 고려해서 고시엔에 나갈 팀을 ‘선발’하는 반면, 여름 고시엔은 철저히 지역 예선을 통해 47개 도도부현(도쿄·홋카이도는 2개팀이 진출)의 대표팀이 나와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 열린 이번 여름 고시엔에도 전국 3603개 고교 야구팀이 도전했다. 전교생 136명에 불과한 이 학교의 선전을 예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고시엔 대회를 주최한 아사히신문의 담당 기자들이 개막 전 약 40분간 진행한 팟캐스트 방송에서도 교토국제고는 “4번 타자 겸 포수인 3학년 선수 나카가와 하야토가 눈에 띈다”고 한마디 하는 데 그쳤다. 많은 전문가들은 도리어 교토국제고가 그간 상대한 군마현 마에바시리쿠에이고, 도쿄도 니쇼가쿠샤부속고, 후쿠이 쓰루가케히고의 활약을 점쳤다.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도 “개막 전에는 다들 교토국제고가 첫 경기부터 필패할 것이라고 했는데 결국 우리가 베스트4에 가장 먼저 안착했다”고 했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한국계 민족학교로 설립돼 1990년대 심각한 재정난을 겪은 학교다. 1999년 처음으로 야구부를 만들어 교토 지역예선 경기에 첫 출전했지만, 이날 결과는 5회까지 0대34 콜드게임 패였다. 교토국제고 관계자는 당시를 “우리 공격은 2분 만에 끝나고 상대팀의 공격은 20~30분씩 계속됐다. 경기가 영원히 계속되는 줄 알았다”고 회상한다.

반전은 2004년 일본 교육법 제1조 적용을 받는 학교로 전환, 사실상 ‘한일연합 학교’가 되면서 시작됐다. 한국인들이 세우고 한국 교육부와 일본 문부성, 양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학교가 되면서 분위기를 일신했다. 2008년 현재의 감독이 취임해 야구부 특훈에 나섰고, 2017년 취임한 박경수 교장도 ‘야구와 K팝’을 학교의 핵심으로 밀어줬다.

교토국제고는 2018년 교토 지역예선 4강 진출에 성공했고 이듬해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올해는 봄 고시엔 진출에 이어, 여름 고시엔 베스트4에 올랐다. 교토 지역 대표가 고시엔 4강에 오른 건 2005년 이후 16년만이다. 교토 시내에는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출장을 축하합니다”라고 써붙인 택시가 돌아다닌다.

박경수 교장은 이날 경기가 끝난 후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 학교 야구부는 한일 연합팀으로 누구도 믿지 않던 일을 해냈다”며 기뻐했다. 야구부 선수는 모두 일본 국적이지만 조부모가 여전히 귀화하지 않은 한국계도 적지 않다고 했다. 박 교장은 “우리 학교의 경기가 한일 관계 개선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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